[120만원 클럽 책 읽는 유명인] 평생 모은 7000권 대학에 기증

120만원 클럽 가운데 최고령은 88세(1923년생). '생각버리기 연습'(21세기 북스) 같은 최신 베스트셀러부터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민음사) 같은 고전과 일본만화 '신의 물방울' 시리즈(학산문화사)를 거쳐 '르네상스는 무엇이었나'(일본 신조문고) 같은 외국 학술서까지 종횡무진 읽는다. 그러는 틈틈이 '치과의사와 이빨요정'(신밧드미디어) 같은 어린이 책을 사서 증손주 3남매에게 선물한다.

주인공을 추적해보니 권이혁 전 보건사회부 장관. 서울대병원장, 문교부·환경처 장관을 거치며 바쁘게 중장년을 보냈다. 1일 서울 연지동 사무실에서 만난 권 전 장관은 "손주들까지는 귀여운 줄 몰랐는데, 증손주를 보니 고놈들이 너무 예뻐 일요일마다 광화문 교보문고에 데려가서 내 책도 사고 그림책도 사준다"고 했다.

"젊어서부터 책 좋아했어요. 1941년 경성제국대학 예과에 입학해 만돌린부에 들어갔어요. 보름간 정말 열심히 만돌린을 쳤어요. 난 뭐든 하면 열심히 하는 사람이거든. 그런데 만돌린부 부장(선배)이 불러 '권군이 있으면 우리 부에 발전이 없다'고 쫓아냈어요. 이후 독서·축구·농구 세 가지에 골몰했는데 축구·농구는 노상 야단맞아도 독서는 정말 즐거웠어요."

권 전 장관이 꼽은 '내 청춘의 책'은 '좁은 문', '죄와 벌', '전쟁과 평화'였다. "특히 '전쟁과 평화'는 정말 재미있었어. 귀족 장교 안드레이와 아름다운 소녀 나타샤, 대갓집 서자(庶子) 피에르의 관계가 멋지게 그려져 밤을 꼴딱 새웠지요. 태평양 전쟁이 막바지로 치달을 때라 청춘의 번뇌와 전쟁의 참상을 다룬 책이 절실하게 다가왔어요."

그는 "한평생 책을 모았지만 서재는 없다"고 했다. 그는 2009년 12월 평생 해로한 부인을 먼저 저세상에 떠나보냈다. 뇌출혈로 쓰러져 9년 7개월간 투병한 끝이었다. 그는 부인을 위해 서울대병원과 가까운 동네(성북동)로 이사하면서 집에 있던 책 7000여권은 성균관대에, 졸업장·훈장 등은 서울대 의학박물관에 기증했다.

노년의 불편에 대해 그는 직설적으로 말했다. "귀도 잘 안 들리고, 눈도 자꾸 침침해져요. 이런 걸 의학적으로는 '부분 사망'이라고 하는데, 냉정하게 말하면 부분 사망이 축적돼 진짜 사망이 되는 거야. 사람은 예외 없이 반드시 죽는데, 그럼 '어떻게 죽을 것인가' 많이 생각해요."

그는 "내 목표는 '웃으면서 죽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기 위해 권 전 장관이 스스로 실천하고 젊은이에게 권하는 인생 요령은 다음과 같다.

①젊었을 때부터 많이 걸을 것. ②남이 해주는 일을 고맙게 여길 것. ③즐겁게 살고 현명하게 늙기 위해 책 많이 읽을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