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라도 권력욕은 똑같아… 대신 남자보다 실용적"

"내가 센 줄 말로 해야 남이 알면 나는 정말 센 게 아니다." (마거릿 대처·재임 1979~90년)

영국의 마거릿 대처,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칠레의 미첼 바첼레트 등 전 세계 여성 리더들의 공통점이 뭔지 파고든 책이 나왔다. 벨기에 출신 프랑스 언론인 크리스틴 오크렌트(Ockrent·67)가 쓴 '왜, 여성 대통령인가'(호미하우스).

오크렌트는 카리스마 넘치는 진행으로 '여왕 크리스틴'이라 불리는 여성 앵커다. 파리에서 전화를 받은 그녀는 "2007년 힐러리 클린턴과 세골렌 루아얄이 각각 미국·프랑스 대권에 도전했을 때 책 쓸 결심을 했다"고 했다.

"이미 독일에선 메르켈이 집권 중이었어요. 클린턴과 루아얄이 석패하긴 했지만 이렇게 많은 여자들이 한꺼번에 강국의 최고 지위에 도전한 건 전례가 없어요."

요컨대 이 책은 '여왕이 쓴 여걸 약전(略傳)'이다. 오크렌트는 "겪어봐서 아는데 여자는 무슨 일을 하건 더 고생한다. 그래서 여성 리더에게 더 관심이 갔다"고 했다.

◆묵직한 여자 메르켈

오크렌트는 우선 메르켈 총리에 주목한다. 메르켈의 부친(개신교 목사)은 동독 법의 테두리 안에서 최대한 체제에 반항했다. 메르켈은 살아남기 위해 이공계(물리학)를 택했다. 통독(統獨) 직후 헬무트 콜 전 독일 총리가 메르켈을 발탁하자 사람들은 "콜의 양녀(養女)"라고 비아냥댔다. 오크렌트는 "사람들이 메르켈을 과소평가한 건 무엇보다 그녀가 땅딸막한 이혼녀였기 때문"이라며 "메르켈은 여성청소년부 장관을 시작으로 어느 자리에 가건 투지·예지(銳智)·실적으로 편견을 부쉈다"고 했다.

◆활달한 여자 바첼레트

좀처럼 돌출행동을 하지 않는 메르켈과 달리 진보 성향의 바첼레트 전 칠레 대통령은 튀는 삶을 살았다. 정치인이던 아버지는 군사 쿠데타가 일어났을 때 전향을 거부하고 옥사(獄死)했다. 바첼레트는 동독 망명을 거쳐 칠레에 돌아왔다. 소아과 의사로 일하며 시민운동에 투신했다. 보수적인 고위 장성들 앞에서 "나는 여자에, 사회주의자에, 싱글맘에, 종교적 불가지론자다. 이만큼 '비호감'이기도 힘들지 않으냐"고 농담할 만큼 당찼다. 대중은 통념을 뛰어넘는 언행에 열광했다. 바첼레트는 보건부 장관을 거쳐 남미 최초 여성 국방장관으로 군 현대화를 주도한 뒤 대선에서 승리했다(재임 2006~10년).

◆공통점은 '실용주의'

오크렌트는 "계파를 따르지 않는 실용주의가 이들의 공통점"이라고 했다. 메르켈은 1999년 콜 전 총리가 불법 정치자금 스캔들에 휘말리자 독일 유력지에 칼럼을 써서 콜을 냉철하게 꾸짖었다. 집권 후에도 국민들에게 화려한 기대감을 주기보다 기대를 줄이면서 분명한 목표를 제시했다(89쪽).

오크렌트가 직접 가본 바첼레트의 집무실은 벽에 걸린 그림마저 빌려다 건 작품일 만큼 검소했다. 그녀는 거창한 이념 논쟁보다 생활 밀착형 복지정책을 추진했다.

'센 여자'의 원조인 대처도 '남들이 나를 좋아해주길 바라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는 게 지론이었다. 대처는 또 타협 없는 '100% 승리'를 추구했다. 그녀는 불법 파업을 일삼는 거대 노조를 박살 냈다. 영국이 포클랜드전에서 승리한 직후에도 대처 지지율은 50%를 간신히 웃돌았다.

◆"더 많은 여자가 우리를 다스릴 것"

원제는 '우리를 다스리는 그녀들'(Madame la…Ces femmes qui nous gouvernent). 오크렌트는 "앞으로 더 많은 여성들이 우리를 다스릴 것"이라고 했다. 산업구조가 변하면서 여성의 역할이 늘었고, 세계화 덕분에 다른 나라 여성 리더의 활약이 소상히 알려졌다. "이제 '서류상의 평등'이 이뤄진 만큼 앞으로 더 많은 여성 리더가 나와 진정한 평등을 이룰 겁니다."

오크렌트가 보기에 여자라서 여자를 지지하는 건 불합리하다. 여성 지도자라고 반드시 청렴한 건 아니고, 다른 여성을 키워주는 것도 아니다. 권력욕도 똑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공통분모가 있다.

'혼자 힘으로 민주주의의 정상에 오른 여성들은 태도에 꾸밈이 없고, 유권자와 공감하는 능력이 있다. 정치 계보가 어찌 됐건 이데올로기에 담담한 입장 대신 사회적 불평등에는 남성보다 적극적으로 관심을 보인다.'(195쪽) 저자가 수십년에 걸쳐 수많은 여성 지도자를 인터뷰한 내용이 녹아 있어 생동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