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보식이 만난 사람] '전면 무상급식 반대 주민투표' 승부수를 던진, 오세훈 서울시장

―오 시장이 부드러운 이미지라 만만하게 보였나?

"사실 나는 기가 너무 세다. 부드러움으로 이를 가리려고 노력해왔다. 처음 말도 안 되는 걸 양보한 것은 앞으로 대화로 풀어야 할 것이 많아서 그랬다. 무상급식에서도 타협점을 찾고 싶었다. '서울시민이 시의회 4분의 3을 야당에 준 이유가 뭔가? 전면무상급식 공약을 보고 뽑았다'는 게 이들의 논리다. 그때마다 '나도 시민들에 의해 뽑혔고, 나는 무상급식을 반대했다'고 맞섰다. 협상하다가 자신들의 안(案)을 받지 않으니 표결로 통과시킨 것이다. 시정협의 중단은 막다른 골목에 몰리면 나도 이렇게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것이다. 안 그러면 4년 내내 '식물시장'이 되겠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당시 참모들이 '주민투표'를 검토했지만 표 대결에서 자신이 없어 미뤄뒀다고 들었다. 오 시장이 '무슨 소리냐 한번 해보자'고 밀어붙였다는데.

"조례안이 통과되기 전에 내가 한번 검토해보라고 지시했다. 내가 제안하면 시의회에서 동의해 주민투표로 넘기는 방식이다. 시의회에서 받아줄 리 없었다. 유권자의 5%가 주민투표 서명을 하는 방법이 있는데 쉬운 게 아니었다."

내가 입을 열려고 하자, 그는 "시간이 넉넉하다. 끝까지 일단 다 들어달라"고 막았다.

"처음부터 주민투표를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시의회 의장과 곽노현 교육감을 만나 대안을 제시했다. 첫째는 TV 공개토론을 하자. 둘째는 초·중학생 학부모들에게 똑같은 분량의 편지를 쓰자. 그런 뒤 이들을 대상으로 찬반 전수조사를 하자. 그렇게 해서 당신 안이 1%라도 많이 나오면 따르겠다고 했다. 일언지하에 거절당했다. 시의회에서 통과시켜줄 텐데 왜 토론하고 똑같이 편지를 쓰느냐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런 일이 있고서 시의회에서 조례안이 통과되자, 다시 주민투표를 생각한 것이다."

―주민투표에 미온적인 참모들을 어떻게 설득했나? "(투표에서 지면) 각자도생(各者圖生)하자"고 했다면서.

"참모들이야 유불리를 따지고, 이길 것이냐 질 것이냐를 먼저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이게 시작이 될 것으로 봤다. 그때는 작년 12월이었으니까, 내년 총선에 각종 '과잉복지 시리즈'가 나올 것을 걱정했다."

―본인의 문제가 발등에 떨어졌는데 총선을 걱정했다고 하면 설득력이 있겠나?

"정치인을 굉장히 불신하는군. 총선을 걱정했다기보다 나라를 걱정했다. 지금 한나라당을 봐라. 그냥 무엇에 홀린듯이 넘어가지 않나. 그때는 서울과 경기도만 막으면 막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한 달쯤 지나 김문수 지사는 '친환경 급식'이라는 딱지를 붙여 슬쩍 넘겨줘버렸다. 내 전쟁의 동력은 꺼져가고, 아주 맥이 빠져가고 있었다. 그 시점에 민주당에서 '3무1반'(무상급식, 무상보육, 무상의료, 반값등록금)을 내놓았다. 지방선거에서 '무상급식'을 내놓아 바람몰이한 것처럼, 총선을 앞두고 내놓을 것이라는 내 예측보다 훨씬 빨랐다. 그러면서 나혼자의 전쟁에 다시 불이 붙었다."

―김문수 지사가 타협을 했다고 보는 건가?

"김 지사가 버틸 거라 생각했다. 이분은 나보다 앞서 무상급식과 1년을 싸웠다. 나를 만날 때마다 '미치겠다. 이 사람들이 말도 안 되는 것을 하자는데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김 지사 쪽에서는 "할 일이 산더미 같은데 무상급식 문제로 의회와 시끄럽게 싸우니 서울시장은 정치력이 없다"고 평했다.

"나도 의회와 딜(deal) 하려면 할 수 있었다. 무상급식을 받아주는 대신, 내가 하고 싶은 사업을 관철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경기도가 타협하기 전날 저녁, 청와대 정진석 정무수석에게 전화를 걸어 '김 지사를 어떻게 설득을 좀 해봐라. 내일 친환경이란 이름을 붙여 무상급식을 발표한다. 그러면 너무 힘이 빠진다'고 부탁했다. 정 수석이 '그러면 안 되지. 내가 설득 한 번 해볼게' 했다. 30분쯤 뒤 '안 되겠다. 자기들은 그렇게 간단다'고 전화했다."

―얼마 전 황우여 원내대표와 만나 지원을 부탁하자, "서울시민의 주민투표인 만큼 서울시당 차원에서 관심을 갖도록 하자"는 말을 들었다. 기분이 어땠나?

"전폭적으로 지원해줄 것으로 기대하고 만난 건 아니다. 그분은 '이게 먹는 문제라서 당이 나서서 공동보조를 취하기가 쉽지가 않다'고 했다. 이게 지금 먹는 문제가 아니다. 학생들은 이미 다 먹고 있다. 지금까지는 학부모 통장에서 매달 5만원씩 빠져나가고 있지만, 전면무상급식을 하면 세금에서 빠져나가는 것이라고 했다. 이게 '먹는 것'으로 상징화되어 있기 때문에, 내년 총선에서 한나라당이 표를 받는데 불리하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아무리 그렇지만 이는 보수정당인 한나라당에서 지켜야 할 '가치'의 문제라고 본다. 자꾸 먹는 것 먹는 것 하는데 먹는 걸로 보지 마라, 그게 저쪽의 전략일 수 있다. 무상급식에서 둑이 터지면 그다음부터는 모든 이성과 논리가 다 통할 수 없게 된다."

―한나라당에서 어느 정도까지 지원을 해줘야 한다고 생각하나?

"투표장에 유권자들이 많이 나오도록 하는 게 도와주는 것이다. 정치란 '말'로 한다. 이게 옳은 길이라고 말해주면 지원이 된다. 지금에 와서는 남경필 의원처럼 김 빼는 말만 안 해도 도와주는 것이다. 자꾸 '시한폭탄'이라고 하는데, 그 말뜻은 이겨도 내년 총선에 부담이 된다는 것이다. 남 의원은 이를 타협해서는 안 될 가치로 보지 않는 것이다. 주민투표가 무산되거나 투표에서 지면, 그 가치 싸움에서 패배한 것이다. 민주당에서는 '시민들도 이런 선택을 했다'며 봇물처럼 포퓰리즘 정책을 내놓을 것이다."

―이번 투표에서 질 수도 있고, 투표율이 낮으면 아예 무산될 수도 있다(주민투표는 유권자의 3분의 1인 278만명이 투표했을 때 성립). 어느 쪽이 최악인가?

"투표함을 개봉했는데 1%라도 지면 그게 빼도 박도 못하는 최악이다. 투표율이 못 미쳐도 굉장히 맥이 빠지는 일이고…."

―투표율이 낮아 무산되는 경우 '이건 내가 졌다'고 받아들일 건가?

"투표율이 3분의 1에 못 미치면 A·B안 모두 채택되지 않은 것으로 본다. 법 조항으로는 불리할 게 없다. 하지만 행안부의 유권해석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가 진 게 된다. 조례안이 통과돼 무상급식이 이미 시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이슈가 관심을 못 끌었다는 점에서 더욱 치명적이지 않을까?

"이게 가장 큰 고민이다. 어떻게 하면 3분의 1이 투표장에 나오도록 할 수 있을까. 투표만 무산되지 않으면 이긴다."

―투표만 성립되면 이긴다?

"여론조사를 해보면 전면무상급식 반대가 15~30% 많다. 투표함만 개봉되면 이긴다고 보는 것이다. 여름철에 공휴일도 아니지만, 이번 투표의 가치만 잘 전달되면 유권자 3분의 1이 투표할 것이다."

―투표 문안은 '소득 하위 50%까지 단계적 무상급식'과 '소득 구분없이 전면무상급식'이라고 들었다. 야당에서 시비를 걸 것 같은데.

"시비를 걸 것이다. 아 다르고 어 다른 게 여론조사고 투표문안인데…. 벌써부터 자기들은 '진정한 단계적 무상급식'이라고 주장한다. 재미있지 않나. '올해 초등학교, 내년 중학교, 그다음에 고등학교까지 전면무상급식할 거다. 그러니 우리도 단계적이지. 왜 니네만 단계적이라 하느냐'는 것이다. 문안을 조정할 용의가 있다. 그걸로 유리하게 갖고 갈 생각은 없다."

―이번 주민투표에서 졌을 경우 어떻게 할 건가?

"주민투표를 제안했을 때 '정치 인생을 건다'고 말했다. 정치인이 정치 인생을 건다는 말을 함부로 하지 않는다. 어떻게 책임질지 지금 고민하고 있다."

―고민 중이면 안 되고, 이미 결정되어 있어야 하지 않는가? 그런 배짱 없이 180억원의 세금을 쓰지는 않을 것이다.

"사실 그렇다. 마음속에 정해져 있다. 이미 참모들에게 각자도생(各者圖生)이라는 말도 했다."

―다른 얘기이지만, '이번 대선에는 안 나간다'고 참모에게 분명히 못박았다고 하던데.

"전혀 사실무근이고, 그런 언급을 한 적이 없다."

―이번 주민투표가 성공하면 본인에게 어떤 변화가 생길 것 같나?

"이게 오세훈의 대권 프로젝트 일환이라고들 한다. 그렇게 의미를 깎아내려 투표장에 나오고자 하는 분들의 의욕을 꺾는 게 상대 진영의 전략이다. 어느 신문 칼럼에서도 이기면 내게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썼다. 나쁠 거야 없지만, 마치 그것 때문에 내가 주민투표에 집착하는 것처럼 말하면 섭섭하다."

―보수의 '가치'를 내세우지만, 서울 광화문광장에는 대한민국 상징물이 없다. 건국대통령 이승만 동상에 대해서는 어떤 입장인가?

"광화문광장이어야 하느냐에 대해서는 좀 더 고민을 해봐야겠다. 다만 동상이 서울 중심 어딘가에는 세워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공무원들 사이에서는 인기가 별로 없다고 들었다.

"공무원 3%를 퇴출시키겠다고 했고… '나는 당신들 대표가 아니라 시민들 대표다'는 말을 겁도 없이 했다. 자신들을 규율 잡고 솎아내야 할 대상으로 여기는구나, 그때 마음이 상한 것 같다. 굉장히 섭섭했을 것이다."

끝났을 때도 의례적인 인사는 짧았다.

오후 4시에 만나러 갔을 때, 오세훈 서울시장은 면도(面刀)까지 하고 나왔다. 결전의 태세를 갖춘 것 같았다. 나도 의례적인 인사를 생략했다.

―한여름 '무상급식' 투표에 180억원의 경비와 행정인력이 동원된다. 시장으로서는 필요했을지 모르나, 시민들은 과연 어떻게 받아들일까?

"최근 한 여론조사에서 60%가 '주민투표 해야 한다', 27.8%가 '필요없다'고 답변했다. 경비와 행정인력을 말하는데, 180억원 크다. 하지만 초등학교 전면 무상급식에 2500억원, 중학교 무상급식에 1500억원 든다. 식자재 가격이 많이 올라 내년에는 5000억원쯤 된다. 5000억씩 10년이면 5조다. 마감시한이 없는 정책이다. '아이들 밥 먹이자는데' 식으로 말하면, 솔직히 마음이 약해진다. 그러나 서울시의 연간 예산이 20조다. 매년 5000억원씩 쓰는 단일 사안은 지금껏 없었다."

―재정적 이유로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것인가?

"투표 경비를 말하니까 돈으로 말했을 뿐이다. 나라의 미래가 걸린, 정말 중요한 결정을 하는 분수령이다. 무상급식은 야당 진영에서 내놓은 '보편적 복지'의 첫 작품이다. 먹는 것으로 포장하면 다들 넘어간다."

―작년 말 서울시의회에서 '무상급식 조례안'이 통과됐을 때, 수면제를 먹고도 잠을 못 이루다가 새벽 무렵 참모들에게 전화 걸어 "지금부터 시의회와 시정(市政)협의를 중단하겠다"고 했다고 들었다.

"이건 싸워야 할 사안이다. 그냥 넘길 사안이 아니라는 데 초점이 있다. 그때가 시정질문 기간 중이었는데 난데없이 조례안을 통과시켰다."

―야당 시의원들이 숫자가 많다고 시장인 나를 우습게 보나 하는 생각이 들었나?

"그런 건 벌써 초월했고. 작년 7월 1일 시의회가 개원도 하기 전에 민주당 시의원들이 찾아와 '양화대교 공사를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다수당이 됐다고 '공갈'을 친 것이다. 이미 예산이 반영돼 공사를 하고 있었다. 중단하면 많은 손실이 생긴다. 하룻밤 고민을 하고 받아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