쎄시봉 세대까지 극장에 발길

'원빈'도, 3D도 없는 영화 '써니'(감독 강형철)가 개봉(5월 4일) 두 달 만에 600만 관객을 돌파했다.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캐리비안의 해적 4' '쿵푸 팬더 2' 같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를 모두 제쳤다. 올해 개봉한 국내 영화 가운데 써니 전에 흥행 1위는 479만명이 본 '조선명탐정'이었다. 지금도 하루에 5만명 정도가 써니를 찾는 걸 감안하면 이번 주 안으로 지난해 한국 영화 흥행 1위였던 원빈의 '아저씨'(622만)도 제칠 전망이다.

데뷔작 '과속스캔들'로 800만 관객을 동원했던 강 감독은 두 번째 영화 써니에서 여고 시절을 함께한 칠공주 써클 '써니'가 25년 만에 다시 모여 생애 최고의 순간을 되찾는 과정을 그렸다. 티켓 파워가 강한 특급 스타나 화제가 될 만큼 자극적인 소재가 없는데도 관객을 끌어들이는 '써니 파워'의 원천은 무엇일까.

①30~40대 여성 타깃 공략에 성공

'써니'는 지금까지 영화 시장이 크게 주목하지 않았던 30~40대 여성 관객들을 주(主)타깃으로 삼은 게 주효했다는 분석이다. '타깃 차별화' 전략의 성공인 셈이다. 영화 예매 사이트 맥스무비에 따르면 써니의 관객 중 30·40대 비율이 각각 30％를 넘었고 여성 관객의 비율은 60％를 넘었다. 유지나 동국대 영화영상학과 교수는 "여성 중에서도 중년의 삶을 조명한 영화는 별로 없었다"며 "자신의 이름을 되찾고, 자신의 삶을 일으켜 세운다는 내용에 중년 여성들이 흥분하고 있다"고 했다.

②'쎄시봉' 복고 열풍을 타다

평론가들은 "쎄시봉 복고 열풍이 부는 가운데 의상과 음악 등을 통해 1980년대의 추억을 불러일으킨 써니도 40~50대가 즐길 수 있는 문화 상품으로 떠올랐다"고 했다.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아동학과 교수는 "요즘의 40~50대는 그 전 세대와 달리 젊은 시절 팝송도 듣고 LP판도 사 모은, 문화적 소비 욕구가 매우 강한 세대"라며 "10~20대 위주의 아이돌 음악이나 자극적인 영화가 주류인 상황에서 (써니의 제작자 측이) 40~50대가 즐길 수 있는 틈새시장을 찾아낸 것"이라고 했다. 김 교수는 "이처럼 공급자가 수요자의 숨은 욕구를 찾아내는 것은 시장의 다양성 확보에도 큰 도움이 된다"고 했다.

③7080 음악의 힘

강형철 감독의 장기인 배경음악의 적절한 활용이 큰 힘을 발휘했다는 평가도 있다. 영화에는 나미의 '빙글빙글', 조덕배의 '꿈에'서부터 보니 엠의 '써니'나 리처드 샌더슨의 '리얼리티'까지 80년대 히트곡이 고루 담겨 있다. 영화평론가 이동진씨는 "음악은 추억을 불러오는 가장 강력한 도구"라며 "리얼리티나 개연성이 떨어지더라도 영화에 쓰인 음악 때문에 80년대나 학창 시절이 잘 살아난다"고 했다. 영화평론가 전찬일씨는 "써니는 최근 다시 유행하는 복고 음악들을 영화 장면과 딱 어우러지게 배치했다"고 했다.

그러나 써니의 '단독 질주'에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영화평론가 강유정씨는 "써니는 현실을 잘 보여준다기보다는 잠깐 현실을 잊고 기분 좋게 해주는 영화"라며 "한국 영화도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처럼 영화적 환상을 팔기 시작한 것"이라고 했다. 현실을 직시하고 해결하려는 영화보다 코미디나 가족영화처럼 가벼운 기획물이 넘쳐나는 건 영화의 질적 발전을 위해 경계해야 할 부분이라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