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문학 대학원생' 된 팔순의 권노갑

동교동계 맏형인 민주당 권노갑(權魯甲·81) 전 상임고문이 팔순을 넘긴 나이에 한국외대 영문학 대학원 석사과정에 입학한다. "왜"라는 질문에 "학이시습지불역열호(學而時習之不亦說乎·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라면서 "그저 공부가 재밌다"고 했다.

"모르는 것을 알게 되는 게 그렇게 좋을 수 없어요. 50년 만에 캠퍼스를 거닐게 되는데 한 번도 결석하지 않을 겁니다."

그의 각별한 영어 사랑은 목포상고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학창시절 권투를 했던 그는 다른 과목은 몰라도 영어교재는 늘 허리춤에 끼고 다녔다. 동국대 경제학과 시절에는 '주경야영(晝經夜英)'했다. 낮에는 경제학 강의를 듣고 밤에는 양주동 교수의 '영시 100선'을 도강(盜講)하는 식이었다. 그는 "영어에 취미와 관심이 많았고, 나름대로 소질도 있었다"고 했다.

6·25전쟁이 터지자 부산으로 간 그는 유엔군 통역관으로 복무했고, 1959년부터 목포여고에서 3년간 영어교사로도 일했다. 1963년 DJ의 비서관으로 정계에 발을 들여놓으면서 영어를 계속하진 못했지만, 모진 세파를 견디면서도 영어책을 놓지 않았다고 측근은 전했다.

본격적으로 영어삼매경에 빠진 것은 정계 은퇴 후인 2007년 3월. 강남역에 있는 동시통역어학원에 등록해 6개월간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수업을 들었다. 2008년에는 영문학계 원로인 이창배 동국대 교수에게 3개월간 아침마다 개인교습을 받으며 워즈워스·예이츠 등 낭만파 시인에 심취했다.

그는 2009년 2월 돌연 하와이대로 어학연수를 떠났다. 측근은 "서울의 사립대 대학원에 응시했다가 토익·토플 점수가 없어 낙방한 이후, 본격적으로 영어를 공부해보겠다며 미국행을 계획했다"고 말했다. 하와이에서 손자뻘 학생들과 화장실을 함께 쓰는 기숙사에서 지내며 '향학열(向學熱)'을 불태웠다. 하지만 김대중 대통령의 서거로 1년 과정을 마치지 못하고 중도 귀국했다.

권 전 고문은 올 초 "영문학 대학원에 입학하겠다"고 결심했다. 일반 학생과 똑같은 전형으로 외대에 응시, 서류와 면접전형을 거쳐 최근 합격통지를 받았다. 그는 학업계획서에 "낭만주의 영시를 공부하고 싶다"고 썼다. 평소 조선일보 '윤희영의 News English'와 '톡톡톡 생활외국어' 코너를 즐겨 본다고 했다.

그는 석사 취득에 상당한 기대와 자신감을 보였다. "문제가 완전 터득되지 않으면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성질이 있어요. 교수들에게 질문 많이 할 거예요. 누가 봐도 '권노갑이 공부 열심히 해서 지식 많이 쌓았구나'라고 인정하게 할 겁니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박사, 그 이상도 계속 하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