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손뗀 달라이 라마, 美서 '더 큰 정치' 하다

"달라이 라마의 진짜 은퇴는 티베트의 독립만큼이나 어렵지 않을까."(4일 AP통신)

지난 3월 티베트 망명정부 총리직을 사임한 달라이 라마(76·사진)가 세계를 무대로 '더 큰 정치'를 펼치고 있다. 서방국을 중심으로 그의 영적 지도력에 대한 수요가 계속 늘고 있기 때문이다. 달라이 라마는 50여년간 수퍼파워 중국의 압박에 맞서 티베트 독립운동을 펼쳐온 데 이어 400년간 역대 달라이 라마에게 이어져 온 정교일치(政敎一致) 지도자의 위상을 깨고 정치지도자 자리에서 물러나는 자기 개혁을 단행해 세상을 또 한 번 놀라게 했다.

◆미국 "그분에게서 답을 구하자"

달라이 라마는 망명정부 소재지인 인도 다람살라를 떠나 6일부터 11일간 미국 수도 워싱턴DC에서 티베트 불교 최대 법회인 '칼라차크라'를 개최한 뒤 시카고를 방문한다. 워싱턴의 버라이존센터에서 진행되는 475달러(약 50만원)짜리 프로그램에 참석하기 위해 미국 내 불교신자 등 10만여명이 예약했다.

토요일인 9일 의회 앞 잔디마당에서 열리는 무료 공개법회엔 더 많은 인파가 몰릴 것으로 보인다.

특히 달라이 라마의 76회 생일인 6일에 열리는 첫 법회엔 인도 마하트마 간디의 손자와 미국 마틴 루서 킹 목사의 아들을 비롯해 불교신자인 할리우드 스타 리처드 기어, 해리슨 포드, 샤론 스톤 등이 참가해 '세계 영성(靈性)의 축제'를 열 전망이다. 미국인들은 달라이 라마에게서 재정 적자를 둘러싼 갈등과 전쟁·테러리즘·자연재해 등 미국을 짓누르는 고통을 달래 줄 영적인 위로를 기대하고 있다. 달라이 라마가 자신의 생일을 기해 행사장으로 세계 정치의 중심인 워싱턴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인 시카고를 택한 것은 중국을 한껏 자극할 수 있는 고도의 정치적 선택이다.

◆50여년간 중국에 맞서 독립운동

티베트를 점령 중인 중국은 지난 4월 차기 15대 달라이 라마를 납치하거나 새 달라이 라마를 지정하는 등 후계를 교란하고, 티베트 망명정부가 사상 처음 선거로 선출한 하버드대 박사 출신 총리 롭상 싱카이(43)의 활동을 노골적으로 방해하는 등 독립운동을 탄압하고 있다.

그러나 20대 때부터 망명정부를 이끌어온 달라이 라마는 집요하다. 그는 티베트 불교를 대중화해 세계를 매혹시키면서 독립운동의 정당성을 알려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2001년 처음 정계 은퇴 의사를 밝힌 뒤 10년 동안은 티베트 민주화 개혁으로 자생력을 다져놓았다. 총리직 사퇴 후엔 미국·유럽 순방과 외국언론 인터뷰로 국제 홍보전을 멈추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