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1위 LG세탁기 사업 이끄는 高卒 CEO

"과연 사람을 평가하는 방법이 학력뿐일까요. 회사 들어와 일하는 것을 보면 그렇지 않은데…. 학력은 전체 능력의 20%에 불과합니다. 창원공장에서 근무 중인 지방대 출신들을 보면 열정과 승리욕이 얼마나 강한지 몰라요. 그런데 회사 바깥은 오로지 학력만을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하니…. 참 모순이라 생각합니다."

LG전자 세탁기 사업부를 상징하는 말은 '세계 1위'다. 매출·수량 점유율(10.1%, 10.2%)이 세계 세탁기 업체 중 유일하게 두 자릿수다. 월풀·보쉬 등 세계적인 업체들을 제치고 2008년부터 3년째 세계 1위를 지키고 있다. 전체 매출규모는 약 4조원. 지난해 팔려나간 세탁기는 1250만대에 이른다. 주력 제품인 드럼세탁기는 미국시장에서 매출액 기준 17분기 연속 점유율 1위다. 이렇게 화려한 세탁기 신화(神話)를 써낸 LG전자 세탁기 사업부의 수장(首長, 사업부장)은 용산공고를 졸업한 CEO(최고경영자) 조성진(55) 부사장이다. 조 부사장은 그 흔한 야간대학 과정도 밟지 않았다.

5일 서울 금천구 가산동 LG전자 가전연구소에서 만난 조 부사장은 1~2년이면 실적에 따라 '옷 벗기'가 예사인 전자업계에서 7년째 세탁기 신화를 이어가고 있다. 비결을 묻자 "열정"이라는 짤막한 답이 돌아왔다. 그는 불리한 여건을 뚜렷한 목표와 뜨거운 열정으로 극복해 왔다. '고단한 삶이었지만 꿈이 있었기에 행복하다'고 말한다. 5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그에게 아버지는 "빨리 공고 졸업하고 가업(家業)인 도자기 제조업을 맡으라"고 했다.

그러나 그는 기계기술자를 꿈꿨다. 1970년대 중반 "요업과로 진학하겠다"고 말하곤, 실제로는 용산공고 기계과 원서를 쓰고 입학했다. 부친이 뒤늦게 알고 노발대발했지만 불붙은 아들의 열정을 막을 수는 없었다. 졸업 후인 1976년 LG전자(당시 금성사) 부산공장에 입사하는 데 성공했다.

처음 배치받은 곳이 그만 영원한 일터가 돼버렸다. 입사 후 세탁기 분야로 배치받았던 것. "당시 세탁기는 '비인기 분야'였어요. 세탁기 설계 쪽에 배정되면 '비전 없다'며 그만둔다는 동기들도 수두룩했어요." 당시 세탁기는 한국에 자체 기술이 없었다. 세탁기 설계 담당자는 일본어와 기계 관련 지식으로 일본의 설계를 베껴내는 게 주 업무였다. "오기가 났어요. 세탁기에 승부를 걸어보기로 했죠. 언젠가 세탁기 기술독립을 꼭 이뤄내겠다는 각오로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