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펀드' 新투자혁명

중소기업에 다니다가 지난해 은퇴한 김모(55)씨는 요즘 매달 150만원씩 꼬박꼬박 월급을 받고 있다. 월급 150만원은 새로운 회사에 취직해 일을 하고서 받는 게 아니다. 퇴직금과 그동안 모아둔 종자돈 2억원을 금융회사에 맡기고 받는 돈이다. 김씨는 "2억원을 그냥 놀리면 언젠가 바닥이 날 것 같아 무척 불안했다"며 "경험도 없이 장사를 시작할 수도 없어 고민했는데 월(月) 지급식 펀드로 해결했다"고 말했다.

713만명에 달하는 베이비붐 세대(1955~63년생)가 신(新) 투자혁명을 일으키고 있다. 1320조원을 쥐고 있는 베이비붐 세대가 자산관리 시장에 거대한 바람을 몰고 오는 것이다.

우리나라 경제 성장을 이끌어 온 베이비붐 세대는 지금까지 티끌 같은 돈을 모아 태산을 만드는 데만 집중해 왔다. 다달이 일정액을 펀드에 투자해서 목돈을 만들어가는 '적립식' 열풍을 이끈 주역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본격화한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와 맞물리면서 목돈을 투자해 매달 일정금액으로 쪼개 받는 월 지급식 투자법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실제로 적립식 펀드는 2008년 이후 꾸준히 감소하고 있는 반면, 월 지급식 펀드는 오히려 급성장하면서 지난달엔 몸집이 6000억원에 육박할 정도로 커졌다.

조병준 동양증권 애널리스트는 "베이비부머 은퇴라는 시대 변화에 맞춰 올 상반기 금융시장에서 월 지급식 펀드가 대세가 됐다"며 "월 지급식은 펀드시장의 핵심상품으로 자리잡으며 제2의 적립식 붐을 일으킬 것"이라고 예상했다.

◆월급 향수를 달래주는 '용돈펀드'

월 지급식 펀드는 주로 정년퇴직을 2~3년 정도 앞두고 있거나 이미 회사를 떠난 은퇴자들을 중심으로 인기를 모으고 있다. 이들은 적립식 펀드나 은행 적금처럼 목돈을 만드는 금융상품보다는, 준비해둔 노후 자금으로 은퇴 후 안정된 소득을 마련하는 데에 더 관심을 갖는다는 것이다.

김동엽 미래에셋 은퇴교육센터장은 "직장을 떠나고 나면 가장 아쉬운 게 월급"이라며 "퇴직 후 별다른 소득이 없는 은퇴자들 입장에선 매달 월급처럼 생활비를 준다니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우리보다 앞서 고령화 사회에 접어든 일본에선 이미 월 지급식 펀드가 금융시장의 핵심축으로 자리 잡고 있다. 김 센터장은 “월 지급식 펀드는 지난 2005년 일본의 베이비붐 세대라고 할 수 있는 ‘단카이 세대’의 대량 퇴직과 맞물리면서 덩치가 급속하게 커졌다”며 “현재 65조엔 정도 되는 일본 공모펀드 시장의 절반이 월 지급식 펀드”라고 말했다.

◆뜨거워지는 ‘월급’ 지급 경쟁

월 지급식 펀드의 주된 투자 대상은 안정적이면서도 상대적으로 수익이 높은 해외채권이다. 은행 예금보다 높은 이자를 지급하려고 브라질 같은 신흥시장 채권이나 선진국 하이일드(고수익·고위험) 채권에 주로 투자한다. 브라질 국채에 투자하는 삼성증권의 월 지급식 상품의 수익률은 연 8.7%(세후)에 이르는데, 은퇴자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나면서 출시 한 달 만에 1000억원가량이 팔렸다. 미래에셋증권의 월 지급식 상품 역시 출시 이후 두 달 만에 4000억원을 끌어모았다.

최근엔 투자자에게 ‘월급’을 더 많기 주기 위해 고수익 채권뿐만 아니라, 위험이 다소 높은 주식에 투자하는 월 지급식 상품도 등장했다. 매달 원금의 0.4~0.6%에 해당하는 수익을 지급하는 게 보통인데, 금융회사 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매달 지급하는 수익률이 1%까지 높아진 것이다.

◆효자(孝子) 가려내려면

월 지급식 상품은 은행 예금처럼 확정금리형 상품이 아니다. 매달 받는 현금이 많으면 무조건 좋게 느껴질 수 있지만, 목돈을 운용해서 나오는 수익이 신통치 않으면 투자 원금이 훼손될 수 있다는 점에 유념해야 한다. 김동엽 센터장은 “월 지급식 펀드로 현금을 많이 주려고 하면 투자 원금에 손을 댈 수밖에 없어 나중에 원금을 전액 돌려받지 못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