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화교소학교 우물
서울 중앙우체국에서 사보이호텔로 이어지는 길, 충무로는 한국인과 외국인 관광객 무리가 뒤섞여 언제나 혼잡하다. 명동 풍경은 점점의 그들이 빽빽하게 채워져 그려진 점묘화다. 우체국을 지나
KT 건물이 끝나는 지점에서 왼쪽으로 50m쯤 걷다 보면 갑자기 탁 트인 개활지가 나타난다. 개교 100주년이 넘은 한성화교소학교다.
본관 출입구에 있는 교명(校名)의 횡서(橫書)는 당대 최고의 서예가 우우임(于右任·1879-1964)의 초서다. 비록 시멘트 양각 위에 검은색 페인트로 덧칠이 거듭된 상태지만 대가의 내공을 엿볼 수 있다.
운동장 한쪽에는 우물터가 보인다. 우물은 얼마 전 메웠다고 한다. 지금은 우물 지붕만 남아 있다. 얼마 전까지 여기서 물을 길어 식수를 제외한 여러 용처로 써왔다. 명동의 화려한 건물과 사람들로 북적이는 길 아래로 우리가 모르던 물길이 묵묵히 흐르고 있었던 것이다.
60년대까지만 해도 을지로 같은 서울시내 중심부에 우물이 있어 식수와 생활용수로 길어 썼다. 화교소학교의 우물은 이들 중 가장 오랫동안 남아 있는 우물 중 하나였다. 우물은 땅속의 사연을 땅 바깥으로 이어주며 숨 쉬게 하는 '배꼽'이다. 화교소학교의 우물은 남산 기슭에 마당이 있고 그 아래로 흐르는 수맥을 틔워 물을 길어내던 소박하고 목가적인 시절의 명동을 상상케 한다.
명동은 서울에서 거의 유일하게 신세대와 구세대가 함께 즐기는 곳이다. 화교학교 주변에는 개화·산동교자 등의 가게가 수십년 동안 여전한 모습으로 자장면·물만두 같은 친숙한 메뉴를 제공하며 구세대를 안심시킨다. 신세대는 유니클로·스파오·망고·밀리오레 등에서 옷을 사고는 딘타이펑이나 꽁시면관 등에서 데이트를 즐긴다.
최근에 급격히 늘어난 환전소와 마사지센터, 한증막, 인삼과 김을 파는 선물가게…. 관광지 명동에는 끊임없이 수많은 인파가 몰려든다. 이들과는 무연한 채 화교학교 운동장에는 어린 학생들의 중국어가 귀엽게 재재거리고 땅속에는 물길이 쉼 없이 흐르고 있다. 예전에도 또 먼 훗날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