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직자도 고령화… 종교계, 노후 고민에 빠지다

전북 고창 선운사. 절 담을 따라 난 큰길 너머에 있는 마을 여기저기에 터 닦고 기둥 세우고 지붕 올리는 전통 가옥 공사가 한창이다. 노스님들이 '반농반선(半農半禪·농사와 수행을 병행)'하며 살 수 있도록 선운사가 조성 중인 '승려 노후 수행마을' 현장이다. 오는 18일 노스님들이 일반인들에게 다도(茶道), 선필(禪筆) 등을 가르칠 수 있는 차(茶)문화 체험관이 문을 열고, 9월에는 스님 두 분이 거주할 첫 주택이 완공된다. 주지 법만(法滿) 스님은 "20년 넘게 선방(禪房)생활을 하면서 입적 뒤 남긴 돈이 없어 다비식도 못 치르는 노스님들을 많이 봤다"며 "승려가 소유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평생 수행만 하려면 이런 시설이 꼭 필요하다"고 했다.

고령화사회, 노년을 맞는 성직자들의 수가 늘면서 각 종교의 고민도 깊다. 각 종교의 전통과 처한 상황에 따라 해법은 다양하다.

◆불교, 승려복지법 제정

스님들은 전국의 사찰을 자유롭게 떠돌며 수행하고 '출가자는 열심히 수행만 하면 다 인연대로 이뤄진다'는 인식도 널리 퍼져 있다. 그러나 그동안 종단·사찰 차원의 체계적인 노후 복지대책이 사실상 전무했다. 이 때문에 스님들이 사적으로 재산을 모으다 종종 문제가 불거지기도 했다. 조계종 총무원 박종학 사찰교무팀장은 "과거 문중·사찰별로 노스님들을 책임지던 전통이 조금씩 희미해지면서 무소유의 승가 공동체 정신을 유지하려면 종단 차원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고 했다.

조계종 스님 1만4000여명 가운데 65세 이상인 스님은 1800명 정도. 조계종은 지난 3월 무소득·무소임 노스님들에게 의료비와 요양비를 지원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승려복지법'을 만들었다. 신임 주지 스님들과 수계·법계를 받는 스님들은 의무적으로 '입적 뒤 개인 재산은 사찰(혹은 종단)에 귀속시키겠다'는 유언장도 쓴다. 이렇게 귀속된 재산은 전액 다른 스님들의 노후 복지에 쓰인다. 이미 스님 3000여명이 이런 유언장을 썼고, 그 수는 꾸준히 늘고 있다. 종단은 수익사업과 모금운동 등을 통해 기금을 마련, 2014년부터는 노스님들에게 다달이 수행연금을 지급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노스님들의 주거공간 마련도 시급한 과제다. 선운사가 조성 중인 노후 수행마을은 사실 종단 내에 유일무이한 노후 주거시설이다. 2014년까지 7~8동의 한옥, 황토집, 초가집 등을 지어 총 20명 안팎의 노스님이 살 수 있도록 할 계획이지만 턱없이 부족하다.

◆천주교, 제도 탄탄

고(故) 김수환 추기경은 생전에 '혜화동 할아버지'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김 추기경이 은퇴한 뒤 서울 혜화동 가톨릭대 교정 안의 사제관에서 생활했기 때문에 생긴 별명이다. 유봉준(80) 토마스 신부도 10년 전 은퇴 이후 줄곧 혜화동 가톨릭대 교정의 '지혜관'에 살고 있다. 지혜관에는 유 신부를 비롯해 '원로 사목자'로 예우받는 신부 5명이 다른 신부들과 함께 살아간다. 유 신부는 "현직이 없을 뿐 봉사할 일은 무궁무진하다"고 했다. 함께 살고 있는 김득권(76) 굴리엘모 신부는 "성당 8곳에서 사목하며 1000쌍이 넘는 주례를 섰는데 그때 신자들이 오래전 친구를 찾듯 계속 찾아와 심심할 틈이 없다"고 했다.

교회가 사제의 노후를 책임지는 것은 가톨릭의 오랜 전통이다. 교구에 따라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대개 은퇴 전 급여에 사제연금을 더한 금액(200만원 안팎)이 매달 지급된다. 전국 곳곳의 가톨릭병원에서 진료도 무료다. 사제관이나 아파트 등 주거도 보장된다. 서울대교구의 경우 7월 현재 교구 사제 총 751명 중 원로 사목자는 43명으로 혜화동 외에도 삼선동, 수유리 등의 공동 사제관에 나누어 산다. 은퇴 뒤 활동도 활발하다.

◆개신교, 교단연금제 등

가톨릭은 교황청과 교구청 중심으로 조직과 명령체계가 명확해 순명(順命)하는 사제들의 처우 역시 교회가 책임지는 전통이 있다. 반면 중세 가톨릭교회의 억압과 권위에 반발해 분리된 뒤 여러 교단으로 분화돼온 개신교는 은퇴 목회자 처우문제에 대해서도 각 교단·교회별로 대응한다. 국내에선 오랜 기간 담임목사로 활동하던 목회자가 은퇴할 때 교회 차원에서 노후에 생활할 집과 퇴직금처럼 전별금을 지급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개신교계 차원의 체계적·통일적 노후 대책은 없는 상태. 이 때문에 교단별로 설립해 운용하는 연금재단은 개신교 노후 대책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개신교계 최대 교단 중 하나로 꼽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측의 경우 1960년 설립한 연금재단이 자산 규모 2770억원으로 성장했다. 등록 목사 1만4997명(2009년 말 현재) 가운데 은퇴 목회자는 1353명이고 연금에 가입하지 못한 은퇴 목사 183명에 대해서도 대부분 적지만 일정액의 생활비를 지원한다.

◆원불교, 교단이 100% 보장

원불교의 경우 성직자 1959명 중 309명이 내부 규정에 따른 68세 이상 은퇴자다. 지난 6월 현재 이 가운데 209명이 전북 익산의 중앙수도원 등 요양시설에 살고 있으며, 이외에도 지역 교당·기관 등에서 살아간다. 은퇴 성직자들에게 지급되는 돈은 매달 51만원 수준으로 평생 청빈(淸貧) 속에 수행과 교화에만 전념하는 원불교 성직자답게 은퇴 전후 급여에 큰 차이가 없다. 문화사회부 하상덕 교무는 "연세에 비해 건강한 분들이 늘면서 은퇴 연령을 유연하게 적용하거나 은퇴자들이 교단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마련 중"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