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 위주 한국인 와인 입맛이 바뀌고 있네

한국인의 '와인 입맛'이 바뀌고 있다. 레드와인 일색이던 인기 와인 리스트에 화이트와인과 스파클링 와인(샴페인 같은 발포성 와인)이 영역을 넓히고 있다. 7월부터 발효된 한·EU FTA(자유무역협정)에 힘입어 중저가의 스페인산 와인이 칠레산 와인의 인기를 위협하고 있다.

8일 와인 유통업체 와인나라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판매량 상위 100종 와인 중에 화이트와인 17종이 포함됐다. 작년 상반기에 5종이 포함됐던 것과 비교하면 3배 이상 증가한 수치다. 올해 인기 리스트엔 스파클링 와인도 7종이나 이름을 올려 레드와인이 차지하는 비율이 지난해 91%에서 76%로 줄었다.

화이트와인은 대형 마트에서도 인기몰이 중이다. 이마트의 올해 상반기 와인 매출 중 화이트와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31.5%로 지난해(26.5%)보다 5%포인트 증가했다. 같은 기간 화이트와인의 매출 신장률(13.5%) 역시 레드와인(4.1%)의 3배를 웃돌았다.

전문가들은 화이트와인의 인기 상승에 대해 "와인을 즐기는 사람들이 건강을 고려해 해산물이나 닭고기 등 화이트와인에 어울리는 흰 살 고기를 많이 찾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김혜령 웨스틴조선호텔 수석 소믈리에는 "와인 입문자나 여성들은 묵직한 레드와인보다 화이트와인을 선호한다"며 "올해는 더위가 일찍 찾아온 탓에 시원하게 즐기는 화이트와인이 더 인기를 끈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화이트와인은 국내에 와인시장이 막 형성되던 1980년대까지만 해도 레드와인을 압도했다. 다소 단맛이 강한 독일산 화이트와인이 당시 '최고의 와인' 대우를 받았다. 그러다 '레드와인이 심장병에 좋다'는 프렌치 패러독스(프랑스 사람들이 유럽에서 레드와인을 가장 많이 마시면서도 심장병 발병률은 가장 낮다는 학설)가 확산되면서 1990년대 중반부터 국내 레드와인 인기는 급상승했다. 와인 포털 사이트인 와인21닷컴의 최성순 대표는 "프랑스, 미국 같은 경우 레드와인과 화이트 비중이 6 대 4 정도"라며 "채소류가 많은 한식에도 화이트와인이 더 잘 어울린다"고 말했다.

와인 산지별 선호도를 보면 이탈리아와 스페인 와인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이마트에서 올해 상반기 많이 팔린 와인 20종 중 9종이 이탈리아산이었고, 스페인 와인 매출은 전년 대비 40%나 증가했다. 와인나라의 국가별 선호도 조사에선 스페인산이 프랑스-칠레-이탈리아-미국에 이어 5위에 올랐다. 박민숙 와인나라 마케팅팀장은 "한·EU FTA의 영향으로 품질 대비 가격이 저렴한 스페인산 와인이 칠레산 와인의 점유율을 크게 잠식해 나갈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