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전용 실버타운 만들래요"

탈북자 손명화(50)씨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2006년 북한에 있는 어머니 전모(79)씨가 한국으로 보낸 편지다. '우리가 왜 떨어져야 하니…'라는 노모의 편지를 꺼내 볼 때마다 참으려고 해도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편지는 손씨가 지난 2005년 한국에 입국한 뒤 연변에 있는 '따이공(帶工·보따리장수)'을 통해 받은 것이다. 노모는 결국 딸과 만나지 못하고 2009년 자살했다. 봉투 속엔 편지와 함께 손씨의 큰아들 최모(26)씨가 군복을 입고 씩씩하게 웃고 있는 사진이 들어 있다. 2005년 탈북할 때 군복무 중이라 데려오지 못했던 아들, 손씨가 꿈에서만 만나는 아들이다.

손씨는 1990년대 중반부터 대규모로 조성된 양귀비 농장의 유능한 지도원이었다. 그는 1998년부터 탈북 직전까지 함북 청진의 한 양귀비 농장에서 일했다. 1㎏ 단위로 포장하면 평양의 공장으로 가져가 헤로인 등 마약을 만들어 일본, 독일 등에 수출했다고 한다. 당시 "양귀비 판 돈으로 김정일이 비자금을 만든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제법 대우를 받던 손씨는 2001년 5월 보위부에 체포됐다. 양귀비를 빼돌렸다는 누명을 썼다. 그는 "매일 죽을 만큼 맞아 죄수복에 핏물자국이 지워지지 않았다"고 했다.

손씨는 이듬해 3월까지 꼬박 10개월을 수용소에서 보냈다. 국군포로로 끌려와 함북 무산광산에서 소처럼 일만 하다 지난 1984년 숨진 아버지 생각이 났다고 했다. 손씨는 탈북을 결심했다. 2005년 10월 둘째 아들 최모(24)씨만 데리고 두만강을 건넜다.

지금까지 한국에서 6년. 손씨는 한 가지 꿈을 꾸며 살았다. 탈북자 전용 실버타운을 만드는 것이다. 그는 전북에 있는 한 대학 사회복지학과에 입학해서 공부를 했고, 내년 2월이면 졸업한다. 그는 지난 4월 정부가 준 생활정착금과 그동안 모아둔 돈을 합쳐 경북 칠곡군에 보증금 3500만원을 주고 방 3칸 규모의 작은 사찰을 빌렸다. 아직은 초라하지만, 시작은 한 셈이다. 손씨는 "탈북한 노인분들을 보면 고생만 하신 부모님이 사무치게 그리워요. 실버타운을 만들어서 못다 한 효도를 그분들에게 하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