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사들은 왜 노고단 정상에 예배당 지었을까

"1000m 넘는 고지에 지은 지리산 선교사 수양관은 130년 전 한국에 와서 수많은 학교와 병원을 세웠던 선교사들의 얼마 남지 않은 흔적입니다." 사단법인 지리산기독교선교유적지보존연합(이사장 안금남 목사)이 오는 12일 서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지리산 선교유적지 심포지엄'을 연다. 이만열 숙명여대 명예교수, 천득염 전남대 교수, 남호현 순천대 교수 등이 근대 문화유산으로서 지리산 선교사 유적의 가치에 대한 학술 논문을 발표한다.

한국 개신교는 올해로 전래 126주년을 맞았지만, 초기 선교 유적은 거의 남아 있지 않은 형편. 개신교계는 지리산 노고단과 왕시루봉 인근의 선교사 유적을 등록문화재로 지정하기 위해 호남 교회를 중심으로 10년 넘게 노력을 기울여왔다.

◆풍토병 피하는 격리 휴양공간

개신교 전래 초기 한국 선교사들에게 최대의 적은 풍토병이었다. 말라리아, 세균성 이질, 장티푸스 등으로 희생자가 속출했다. 1897년 한국에 온 유진벨 선교사의 외증손자인 세브란스병원 국제진료센터장 인요한 박사는 "당시 전염병으로 전라도의 유아사망률은 요즘 아프리카보다 더 높았다. 선교사 자녀(유아)사망률도 절반을 넘었고, 갓난아기 10명 중의 8명이 죽었다는 이야기도 있다"고 했다. 풍토병으로 희생된 선교사 가족은 파악된 것만 전라도에서 60여명에 달한다. 인요한 박사는 지난 1984년부터 사비를 들여 지리산 선교유적지를 관리해 왔다.

이만열 숙명여대 명예교수는 "특히 풍토병이 심해지는 6~8월간 격리된 공간에서 지낼 필요가 있었다. 노고단 정상은 일반인들의 출입이 어려웠던 탓에 휴양공간으로 적합했다"고 말했다. 1922년 미국 남장로회 한국 선교부가 처음 천막 7동과 원목 주택 6동으로 시작해, 1940년대까지 예배당과 돌집, 건축물 등 건물 56개 동이 지리산 노고단 인근에 지어졌다. 한때 50여명의 직원이 근무하는 한국의 대표적 외국인 수양관 단지였다. 일제 침략과 6·25전쟁으로 훼손돼 현재 노고단에는 예배당 유적만 남아 있다.

◆초교파적 성경 한글 번역 논의도

호남 선교의 개척자인 미국 남장로교 윌리엄 레이놀즈(1867~1957) 선교사는 1931년 나온 책에서 "여건이 허락하면 여름에 지리산에서 모여 (논의했다)"는 신약성경 개역 관련 기록을 남겼다. 지리산 수양관이 선교사들이 모여 성서 한글 개역 작업을 하는 공간이 된 것이다. 이만열 교수는 "한글판 성경 보급은 한글 정착에도 큰 역할을 했다"며 "지리산 선교 유적지는 개신교 역사뿐 아니라 민족사적으로도 의미를 갖는다"고 말했다.

선교사 유적지의 가옥은 각국 문화의 용광로였다. 미국, 영국, 호주, 노르웨이에서 온 선교사들은 고향의 건축 양식에 온돌과 아궁이 등 한국적 건축 특색을 가미해 집을 올렸다.

남호현 순천대 건축학부 교수는 "지리산 선교유적지는 외국 문화와 한국의 전통, 현지 생태환경이 서로 조화를 이뤄 조성돼 있어 근대 문화유산으로서 가치가 매우 크다"고 말했다.

◆신사참배 반대하며 떠난 뒤 훼손

지리산 선교 유적지라고 일제의 압박을 피할 수는 없었다. 1935년 미국 남장로교 선교부는 "학교를 폐쇄할지언정 신사참배는 수용할 수 없다"고 공식 선언했고, 1937년 에는 10개 학교가 문을 닫았다. 1940년에는 모든 자산을 남겨둔 채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남장로교가 중심이었던 지리산 선교사 휴양지는 방치되는 운명에 처했다. 6·25와 빨치산 소탕전을 거치며 노고단 유적은 거의 훼손됐고, 현재는 파괴된 석조 예배당 유적만 남아 있다. 휴전 후 귀환한 선교사들은 1962년부터 정식으로 지리산 왕시루봉 일대에 출신국가별 건축양식을 적용한 건물들을 짓고 휴양관으로 활용했으나, 선교사들의 수가 줄어들며 이 역시 건물만 남았다.

지리산기독교선교유적지보존연합 이사장 안금남 목사는 "초기 선교사들의 사랑의 빚을 갚고 믿음의 순수성을 회복하는 순례지로 만들기 위해 지리산 선교유적지에 대한 등록문화재 지정 운동을 더욱 확대해 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