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회 LG배 세계기왕전] 大馬의 생환

〈제9보〉(111~125)=프로바둑에서도 대마는 심심치 않게 절명한다. 하지만 절체절명의 위기를 뚫고 기막히게 살아가는 경우가 더 많다. 그럴 때마다 대마불사(大馬不死)란 탄성이 터지곤 한다. 이 현상을 어떻게 분석할 수 있을까. 원래 쫓는 쪽의 살의(殺意)에 비해 쫓기는 쪽의 생존 의지가 더 강한 법이다. 실제 전쟁에선 적을 죽여야만 자신이 살아남지만 바둑의 국지전에선 대개 공수(攻守)의 입장 차가 뚜렷하다.

4분 만에 111이 놓였다. 119까지 필연. 이것으로 상변 흑진엔 별 맛이 없고 우상귀 일대 백만 일망타진됐는가 싶었는데 120이란 묘수가 터졌다. 여기서 흑이 '가'로 젖히면 백 석 점을 잡을 수는 있지만 외곽을 도배질당해 중앙 흑 두 점이 잡힌다. 결국 백 대마는 124까지 '귀신같이' 살아갔다.

거슬러 올라가 111로 112에 두면 어떻게 될까. 참고도 9까지는 일단 필연이며 21까지도 외길 진행이다. 그런 뒤 22 이하 30까지 조이면 흑이 오히려 잡히는 수상전이 된다. 이 판에선 흑이 필살의 의지로 추적했음에도 불구하고 대마 포획에 실패하고 있다. 천야오예가 잔뜩 찌푸린 얼굴로 125에 붙여 백진 파괴에 나선다. 물론 '나'로 나오는 축머리도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