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누군가를 떠나보냈나… 지는 저녁 노을, 서글픔이 핀다

"호퍼 예술의 중심 주제는 외로움이다. 호퍼의 인물들은 집에서 멀리 떠나온 것처럼 보인다. 그들은 호텔 침대 가장자리에 서서 편지를 읽거나 바에서 술을 마신다. 창밖의 움직이는 기차를 물끄러미 바라보거나 호텔 로비에서 책을 읽는다. 상처받은 듯 자기 내부를 응시하는 표정이다. 방금 누군가를 떠나왔거나 떠나보낸 것 같다."

스위스 출신의 소설가 알랭 드 보통은 산문 '슬픔이 주는 기쁨'에서 미국 화가 에드워드 호퍼(Hopper·1882~ 1967)를 언급하며 이렇게 썼다.

화려한 도시 생활 이면에 드리워진 고독과 불안은 호퍼의 작품 세계를 지속적으로 지배해온 주제다. 텅 빈 밤거리에 홀로 불 밝힌 길모퉁이 식당에서 술잔을 기울이는 사람들을 그린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1942), 교외의 외딴 주유소에서 언제 올지 모르는 손님을 기다리며 주유기를 점검하고 있는 직원을 그린 '주유소'(1940) 등이 호퍼의 대표작이다.

9월 25일까지 서울 덕수궁미술관에서 열리는 미국 휘트니미술관 소장품전 '이것이 미국미술이다'에는 에드워드 호퍼의 '해질녘의 철로'(1929)가 나왔다. 노을 진 저녁 하늘을 배경으로 역광을 받아 그림자 진 관제실과 전봇대가 우뚝 서 있고, 그 아래 근대화의 산물인 철길이 지평선과 평행을 이루며 끝없이 달려가는 모습이 아릿한 서글픔을 자아내는 그림이다. 철길은 호퍼와 인연이 깊은 소재다. 호퍼에게 '미국적인 장면을 그리는 사실주의 화가'라는 명성을 처음 안겨준 작품도 빅토리아풍의 저택 앞을 철길이 가로지르는 황량하면서도 적막한 풍경을 그린 '철길 옆의 집'(1925)이다.

'이것이 미국미술이다'에는 호퍼의 작품뿐 아니라 뉴욕 뒷골목의 소란스럽고 소박한 일상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그려낸 존 슬론(Sloan·1871~1951)의 '그리니치 빌리지의 뒷골목'(1914)도 나왔다. 겨울 마당에서 아이들이 눈사람을 만들고, 검은 고양이가 눈 위에 발자국을 남기며 지나가는 것을 한 소녀가 창문을 열고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내다보는 장면을 포착했다. (02)755-20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