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 순간, 추위에 떨며 실사단 맞던 평창 어린이들 떠올랐죠"

지난 6일 오후 5시 20분(한국시각 7일 오전 0시 20분)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 국제컨벤션센터(ICC)에서 자크 로게 IOC 위원장은 2018년 동계올림픽 최종 개최지가 적힌 발표문을 들고 나왔다. 그는 'PYEONGCHANG'이라고 적힌 영문 개최지를 내보이며 '평창'을 외쳤다. 그 순간 조양호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위원장(한진그룹 회장)은 맥이 탁 풀리는가 싶더니 뇌리에 무엇인가 파노라마가 스쳤다. "강원도 평창 어린이들, 고생했던 강원도민의 모습들이 연속해 떠오르더군요. 지난 2월 IOC 실사단이 평창에 왔을 때였어요. 어린 친구들이 영하의 날씨 속에서 손을 '호호' 불면서 실사팀을 기다렸죠. 그 어린 친구들이 2018년이면 다 커서 '우리가 올림픽을 유치했다'라고 말할 것이라 생각하니 감회가 남다를밖에요."

조 위원장이 지난 8일 귀국 후 처음으로 말문을 열었다. 피곤한 모습이었지만 얼굴엔 이기고 돌아온 장수의 여유가 흘렀고, 목소리는 '평창'의 낭보를 전 국민에게 선사한 동계올림픽 유치위원장으로서 힘이 넘쳤다.

―여전히 '평창' 외침이 들릴지 모르겠습니다. 유치소감은.

"처음엔 멋모르고 위원장을 맡았어요. 그런데 평창을 둘러보고 생각이 확 달라졌죠. 모라토리엄(채무지급유예) 직전이던 강원도를 보고 깜짝 놀랐어요. 황폐한 평창, 부도 직전의 알펜시아…. 강원도는 물론 나라가 어찌 될까 걱정스러웠죠. 성공적으로 끝나 정말 대만족입니다."

―국내에서는 한두 달 전부터 (과반수준인) 50표 이상 확보했다는 얘기가 돌았습니다. 언제 '유치 성공'을 확신했나요.

"1월만 해도 45대 55 정도 비율로 불리했어요. 5월 로잔 테크니컬 브리핑을 전후로 50대 50까지 올라갔죠. 마지막 1주일 전에야 '분위기가 정말 바뀌었다'라고 느꼈어요. 지난 2일 모나코 알베르 2세 국왕 결혼식에 갔더니 그간 본체도 안 하던 40여명의 IOC 위원들이 '하이, 미스터 조!'하며 먼저 인사하더라고요. '우리가 이겼다'하는 생각이 들고, '됐다'는 확신이 생기더군요."

―스포츠 외교경험은 없습니다. 2009년 유치위원장을 맡은 이후 후회하신 적은 없었나요.

"많았죠. 문화체육관광부, 대한체육회, 강원도, 대한항공 등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유치위원회를 만들었는데 모두 따로 놀더군요. '5개 파(派), 6개 파' 이런 얘기도 돌았고. 밥도 같이 안 먹을 정도였으니."

―어떻게 극복했나요.

"고민 끝에 신갈 연수원에 모아놓고 한 가지를 당부했어요. '우리가 두 번이나 진 이유는 내부 분열 때문이다. 큰 것을 위해 작은 것을 양보하자'고 말이죠. 선친(고(故)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자)께서 늘 말씀하셨어요. '지고 이기라'고요. 당장의 승리에 집착하지 말라는 뜻이죠. 선친 말씀을 새기고 또 새겼습니다."

―이번 유치전은 마지막 프레젠테이션이 어느 때보다도 중요했습니다.

"유치위원장이 PT 잘못해 떨어졌다는 소리 들을까 봐 정말 노심초사했어요. 스피치 트레이닝 전문가를 찾아 영국까지 날아갔어요. 전문가를 찾아 1주일에 3번, 한 번에 2시간 이상씩 연습했죠. 지난 1년 반을 그렇게 보냈습니다. 영어연설을 잘하기로 유명한 처칠, 케네디, 오바마, 링컨 대통령의 연설 음성을 수없이 듣고 아예 외울 정도가 됐어요."

―이명박 대통령과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등 다른 분들의 역할은.

"1차 투표에서 우리는 50표 안팎을 예상했어요. 63표가 된 것은 이 대통령이 더반 현장에서 열심히 뛰셨기 때문입니다. IOC 위원들을 만나 설득을 잘하셨어요. 예상했던 50표 중 20~30표는 IOC 위원인 이건희 회장의 노력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생각해요. 개인적인 판단입니다."

―조 위원장은 몇 표를 획득했나요.

"흑묘백묘(黑猫白猫)이론입니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되듯 결국 이기면 되는 거 아닙니까. 나머지 표들은 저와 모두가 함께 일군 것이죠."

―앞으로는 조직위원장 역할이 중요해 집니다. 맡으실 겁니까.

"국제관례를 보면 유치위원장이 조직위원장을 이어받는 경우가 많아요. 그러나 전 아직 오퍼도 안 받았고, 생각도 안 하고 있어요. 다만 국제감각을 지닌 기업인이 맡아야 한다는 생각만은 갖고 있어요. 내가 유치과정에서 한 약속들이 있기에 일정 역할을 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