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은 덩어리다? 조각은 내면이다!

조각가 김인겸(66)은 두께 3~5㎜짜리 철판을 구부리고 용접해 작업한다. 그의 2010년 작 '스페이스-리스(Space-less)'는 두께 5㎜, 높이 190㎝의 철판에 진주빛 아크릴 물감을 칠해 하이힐 모양을 만든 작품. 작품의 가로 폭은 205㎝로 길지만 두께는 20㎝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100㎏이 넘는 이 작품이 멀리서 보면 거대하고 무거운 입체처럼,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면 가볍고 얄팍한 평면 작품처럼 보이는 것은 소재와 작품의 두께가 얇기 때문이다.

24일까지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개인전 '스페이스-리스'를 여는 김인겸은 2007년 무렵부터 입체와 평면의 경계를 초월하는 작품에 몰두해 왔다. 그는 "조각의 본질이 덩어리감과 무게감이라는 고정관념을 깨고 싶었다"고 했다.

전시에 나온 작품은 모두 16점. 하이힐처럼 구체적 사물을 형상화한 것도 있지만 대개 입방체나 왜곡된 삼각형, 타원 등 기하학적 도형이다. 작품의 두께는 대부분 20~30㎝ 내외, 제목은 모두 '스페이스-리스'다. '스페이스-리스'란 "'스페이스(space·빈 공간)'가 없는 무한(無限)의 경지를 추구한다"는 뜻으로 작가가 붙인 제목이다. "오래전부터 실체와 이미지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 왔어요. 부피감과 무게감을 가진 정육면체라는 눈앞의 실체를 마음에 담으면 어떻게 될까요? 마음속의 이미지에서는 실체의 덩어리감은 사라집니다. 저는 육탈(肉脫)해 영성(靈性)의 경지로 가는 조각을 하고 싶습니다."

홍익대 조소과 출신인 김인겸은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이 처음 개관했던 1995년 전수천, 윤형근, 곽훈 등과 함께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대표작가로 선정됐다.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투명 아크릴 벽에 물을 채운 설치작품으로 물의 도시 베니스를 표현했던 김인겸은 이듬해인 1996년 파리 퐁피두 센터 아틀리에 입주작가로 초대된 것을 계기로 2004년까지 파리에 머무르며 작품활동을 했다. 파리에서의 생활이 작품에 변화를 가져왔다. "재료를 구하기가 쉽지 않아서 종이 위에 잉크로 입체를 그려 조각작품의 느낌을 냈어요. '드로잉 조각'이라고 이름 붙였죠. 그때부터 평면과 입체의 경계를 넘나들게 됐죠. 그전엔 저도 남들처럼 돌 깨고, 나무 깎고, 이것저것 붙이면서 '실체'에 중점을 둔 작업을 했었는데 그 이후부터는 물질성을 배제하게 된 거죠."

김인겸의 다음 목표는 지금보다 더 덩어리감이 없는 작품을 만드는 것. 그는 "철판에서 벗어나 플라스틱, 유리, 종이, 셀로판지 같은 더 부드럽고 투명한 재료를 사용하는 것을 고려 중"이라고 말했다. "조각이 덩어리감을 최소화했을 때, 저는 그 작품과 함께 하늘나라로 갈 수 있을 것 같아요. 제가 생각하는 예술이란 그런 경지입니다." 작가는 이번 전시회와 함께 1980~2010년 작품과 평론을 총망라한 책도 발간했다. (02)720-1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