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루탄 연기 자욱했던 교정, 이렇게 변했다니…"

1973년 겨울 앨버트(당시 22세)와 캐시 라이트(당시 26세) 부부가 김포공항에 내렸을 때 낯선 나라 한국은 막 걸음마를 뗀 개발도상국이었고, 민주화에 대한 열망으로 혼란스러웠다. 부부는 건국대에서 2년간 영어를 가르쳤다. 당시 건국대는 건물이 몇 채 되지 않아 허허벌판 같았고, 하루가 멀다 하고 시위가 벌어져 교문 앞엔 최루탄 연기가 자욱했다.

장대비가 내리던 지난 12일 환갑을 넘긴 둘이 36년 만에 한국에 다시 와 건국대 교정을 밟았다. 한국국제교류재단이 우리나라에서 봉사한 옛 평화봉사단원들을 초청한 행사를 통해 방한했다.

앨버트는 "처음 왔을 때는 눈덮인 모습이었다"며 "이렇게 다시 보니 눈물 날 것 같다"고 했다. 부부는 새 건물이 여기저기 솟은 캠퍼스 구석구석을 걸으며 "여기가 우리가 강의한 건물이고, 이 건물 뒤엔 우리가 살던 집이 있었다"고 기억을 더듬었다.

부부는 1960년대 케네디 대통령이 만든 평화봉사단 일원이었다.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며 가까워져 박사과정을 밟던 중 결혼했다. 이들은 "우리 능력을 어려운 곳, 어려운 사람을 위해 쓰자"며 이역만리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도착 직후부터 고생의 연속이었다. 앨버트는 "한겨울에 얼음물을 깨서 세수하고 면도했던 기억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당시 한국은 경제 사정이 어렵고 오일 쇼크까지 겹쳐 물을 덥혀 쓰기도 쉽지 않았다.

민주화 요구 시위에 나선 학생들이 쓰러지고 다치는 것도 바라보기 힘든 고통이었다고 했다. 캐시는 "수업하다가 보면 밖에서 갑자기 큰 소리가 나고, 학생들이 우르르 뛰쳐나가곤 했다"면서 "군인들이 탱크를 몰고와 최루탄을 쏘아댄 적도 있다"고 했다. 그는 "한바탕 시위가 벌어지고 나면 다음 수업 때는 꼭 학생 두어 명이 자리를 비웠는데 어디로 갔는지 궁금했다"고 했다.

라이트 부부는 2년의 한국 봉사를 마치고 미국으로 가 영문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캐시는 "나는 비록 아이를 낳지 않았지만, 그때 건국대에서 가르친 1000명의 아들·딸이 있다고 늘 생각하며 지내왔다"고 했다. 앨버트 라이트는 "우리 인생에서 가장 보람 있던, 그 추웠던 겨울의 한국이 이렇게 변모했다니 그저 놀라울 뿐"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