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에 비친 '모던 조선'] [43] "우리도 자유연애 하자" 10대들 탈선에 경찰도 "두통"

근대화와 자유연애 풍조가 빠르게 확산되던 1920년대에 새로운 골칫거리가 이 땅에서 기승을 부렸다. 10대 불량 소년·소녀들의 범죄가 급증한 것이다. '모던 뽀이' 형님과 '모던 걸' 누나의 증가에 편승한 10대들의 일탈은 90여년 전 신문 사회면에도 요란하게 보도됐다.

1920년대 초·중반의 불량 청소년 범죄는 부녀자 희롱이나 절도가 대부분이었다. '남자로서는 입에서 젖내가 난다 하여도 과언이 아니라 할 만한 어린 아이들이 소위 연애를 하느니 하면서 여학생의 뒤를 쫓아' 다녔고 경찰은 '일반 풍기에도 나쁜 영향을 준다'며이런 행위도 엄중 단속했다. (조선일보 1924년 5월 6일자)

1927년에는 '꽃 같은 여학생'들로 가득한 '경성 시내 관훈동의 모 여학교'에 밤마다 돌멩이가 날아들어 경찰이 수사를 벌인 끝에 '불량 소년의 짓'으로 판단했다. 사건 발생 전 이 기숙사에 '정체 모를 남자에게서 매일 꿀같이 달콤한 염서(艶書)가 들어왔으나 사감이 압수'하자 돌이 날아들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1927년 7월 3일자)

아이들 장난 같던 10대들 범죄는 시간이 갈수록 흉포화한다. 원산의 17세 소년은 좋아하는 여자가 다른 사람과 결혼식 날짜를 잡자, 불량한 친구들 10여명을 데리고 여자 아버지를 찾아가 "당신 딸을 나의 아내로 주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협박하다가 체포됐다.(1929년 10월 22일자)

12세 된 조선 소년과 15세 일본 소년은 일본 홋카이도로부터 도쿄를 거쳐 부산에 상륙해 경성까지 장거리 여행을 해가며 숱한 소매치기와 절도를 벌이는 '범죄 릴레이'를 했고(1931년 10월 7일자)경성의 불량 소년 60여명이 시내 화원정(花園町·중구 예관동) 한 식당을 무대 삼아 3일간 대난투극을 벌이며 도심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1934년 7월 16일자) 심지어 대구에서는 15세 소년 3명이 총포상의 권총을 훔쳤다가 붙잡히기도 했다.(1940년 6월 10일자)

불량 소년들 중엔 식민지 조선 땅을 휩쓴 가난에 허덕이다 가출한 10대가 많았다. 1924년 경찰이 경성의 불량 소년 소녀 205명을 붙잡아 조사해 보니 175명이 소년이었다. 학생은 51명에 불과했다. 평양에선 황해도 삼남지방 등지에서 가난을 못 견뎌 취직이라도 해 보려고 무작정 도시로 왔다가 '취직은 못 하고 배는 주리게 되자 닥치는 대로 금품을 절취하는 비참한 소년들'이 백수십 명에 이르렀다. 붙잡혀서도 "차라리 형무소에 보내어 밥을 먹게 하여 달라"는 이 소년들 때문에 당국은 골치를 앓았다. 이 기사엔 '경찰측까지 두통'이라는 제목이 붙었다.(1934년 9월 26일자) 1937년에 이르면 불량 소년이 전 조선에 무려 2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1937년 3월 2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