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회 LG배 세계기왕전] 최초의 長考

〈제1보〉(1~24)=올해 LG배 1회전 '서프라이즈 시리즈' 가운데 제2탄이다. 박정상이 전기(前期) 준우승자 쿵제(孔杰)를 메다꽂은 한 판. 박정상도 세계제패 경험자인 만큼 경천동지할 일은 아니지만, 상대가 최근 몇 년간 세계 최정상권을 누벼온 강자라는 점에서 그의 승리를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올해 27세인 박정상은 두 살 위의 쿵제에게 이 바둑 전까지 1승 2패로 한 판 뒤져 있었다.

두 기사의 공통점은 다른 어떤 기사들보다도 신중하다는 것. 하지만 초반 진행은 매우 빠르다. 중반 이후 승부처에 시간을 집중 투입하겠다는 뜻이다. 이는 현대바둑의 초반 정석과 포석이 끝없는 연구를 거쳐 상당 부분 규격화돼 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7은 '가'가 많지만 이렇게도 둔다. 9로는 참고도 1로 받는 것도 훌륭한 응수. 9까지 또 다른 한 판이다.

9로 협공하자 23까지 번개처럼 두어졌다. 여기까지 흑백의 모든 수가 노타임(1수 1분 이내 착점)이다. 그러나 다음 수가 쉽지 않다. 쿵제가 천천히 차를 마시며 최초의 장고에 들어간다. 상변과 좌변 모두 흑세가 강한 곳에서 효율적으로 뿌리를 내릴 적지(適地)를 찾더니 무려 14분 만에 24를 선택했다. 이번엔 박정상이 안경을 추어올리더니 상체를 깊이 꺾는다. 흑의 다음 한 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