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회 LG배 세계기왕전] 번져가는 불길

〈제2보〉(25~38)=바둑계 '팔방미인'이라면 보통 목진석을 꼽지만 박정상도 그에 못지않다. 우선 방송 솜씨가 일품이다. 차분하고 조리 있으면서도 활력 넘치는 해설로 유명하다. 게다가 글 솜씨도 프로기사들 중 최고 수준이다. 평소 언행처럼 그의 글 또한 위트가 넘친다. 그 박정상이 올해부터 방송 해설을 중단했다. 승부에 올인하기 위해서다. 하긴 27세의 건실한 청년 박정상에겐 아직은 '토너먼트 프로'가 훨씬 잘 어울린다.

백△는 일종의 파종(播種)이다. 시커먼 흑진 속에 뿌린 씨가 발아(發芽) 과정을 거쳐 가지를 드리워야 △의 임무는 완성된다. 반대로 흑으로선 최소의 땅만 허용하고 성장을 억제해야 할 입장이다. 흑의 선택은 25. 백이 참고1도 1로 터를 넓히면 2, 4로 압박해 간다는 뜻이다. 참고2도 1엔 2, 4의 수단을 준비하고 있다.

그래서 이 경우엔 백26 붙임이 맥점으로 돼 있다. 흑34, 백27, 흑37을 거쳐 '가'로 전개하겠다는 뜻. 흑은 27, 29로 그 제안을 단호히 거부했다. 협상이 결렬되면서 쌍방의 돌들이 서로 갈갈이 찢겼다. 35의 젖힘은 이 경우 리듬을 타기 위한 맥점. 한 치 앞이 안 보이는 어지러운 난전이 들불처럼 확산돼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