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준의 관심은 늘 1000년 후였다… 그에 비해 나는 어디쯤일까 되묻죠

20일 서울 대치동 포스코 센터 1층에 대형 달항아리가 '떴다'. 설치미술가 강익중(51)이 가로 5m, 세로 5m의 흰색 플라스틱 판에 하늘빛 템페라로 커다란 달항아리를 그린 설치 작품 '선릉에 뜬 달'이다. 9월 28일까지 포스코 센터 내 포스코 미술관에서 개인전 '강익중 대(對) 강익중'을 여는 작가는 "밤에는 작품 옆 조명을 환하게 켜서 건물 밖에 있는 사람들도 달항아리를 볼 수 있도록 했다. 이 빌딩 근처에서 약속을 정하는 사람들이 '달이 뜬 건물에서 만나자'고 했으면 좋겠다는 상상을 했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는 1984년 미국 뉴욕 프랫 아트 인스티튜트로 유학 간 이후 미국에서 활동해 온 강익중이 국내에서 갖는 네 번째 개인전이다.

캔버스를 3인치(7.62㎝) 크기로 잘라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뉴욕 지하철에서 그림을 그렸던 초기 작품, 1994년 뉴욕 휘트니미술관에서 백남준과 2인전을 갖고 1997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특별상을 받으며 작가로서 인정받기 시작하던 시기의 작품, 그리고 최근작까지 30년 가까운 강익중의 작품세계를 한눈에 훑는 20여점이 전시된다. 2층 전시장에 들어서자 달그락거리는 그릇 소리가 물소리와 어우러져 들려왔다. 강익중은 높이 1m 20㎝, 둘레 16m 가량의 실제 흙으로 작은 산을 만들고 그 산 둘레를 휘감아 도는 개울을 만들었다. 이 개울에 직접 빚은 미니 달항아리 200개를 띄웠다. 펌프를 설치해 물은 계속 흐르고, 물살을 따라 달항아리도 끊임없이 돈다. 포석정(鮑石亭)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의 이름은 '산. 달항아리'(2011).

강익중은 "자연의 순환을 표현하고 싶기도 했고, '철강'의 느낌이 강한 포스코 센터에 흙과 물의 기운을 집어넣고 싶기도 했다"고 했다. "인간은 누구나 외줄을 타듯 삶을 살아가는 거예요. 두 손으로 긴 장대를 잡고 균형을 잡으면서 말이죠. 제 장대의 한쪽 끝은 '과거와 전통', 또 다른 한쪽 끝은 '미래와 비전'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외줄에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 양쪽 장대의 길이를 맞춘다고 생각하며 작업해 왔어요."

강익중에게 이 '미니회고전'에 대한 감회를 물었더니 백남준 이야기로 대답을 대신했다. "1994년 휘트니미술관 2인전 후 백 선생님이 말씀하셨죠. '30세기에는 무슨 일이 벌어질까?' 저는 그때 '아, 이분은 1000년을 내다보고 사는 분이구나' 하고 생각했어요. 사람이 원을 그리고 산다면, 이분이 그리는 원의 반경은 1000년일 거라고 생각했죠. 선생님에 비하면 저는 어디쯤 와 있을까요? 아직 모르겠어요. 다만 '내가 왜 작업을 하는가'를 생각하면 세 가지만은 분명해요. 나를 흔들어 깨우기 위해, 사람들 사이를 연결시키기 위해, 그리고 치유를 위해."

백남준은 휘트니미술관에서 열린 2인전 때 "더 좋은 자리를 강익중에게 주라"고 할 정도로 강익중을 아꼈다. 마침 포스코센터 1층 강씨의 '선릉에 뜬 달' 위엔 90년대에 설치된 백남준의 '철이철철'('TV깔때기, TV나무')이 강씨 작품을 내려다보며 모니터의 불빛을 반짝이고 있다. 마치 하늘나라 백남준이 후배 강익중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 주는 것처럼. (02)3457-16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