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수 한그릇에 담은 中道… 탐욕 쏙 빼고 깨달음 팔다

"부처님은 항상 그 시대의 가장 중요한 문제에 명쾌한 해답을 주셨던 분입니다. 현세에는 모두가 얽매여 있는 돈이 가장 큰 문제지요. 부처님이 지금 살아 계셨다면 아마 최고의 사업가가 돼서 돈에 얽매이지 않는 삶의 방법을 보여주시지 않았을까요?"

조계종 총본산인 서울 견지동 조계사 옆, 주지 토진(土眞·50) 스님은 지난달 초 옛 삼오모텔 건물 1층에 국숫집 '승소(僧笑)'를 열었다. 원래 '승소'란 스님들이 국수를 하도 좋아해 붙은 국수의 별칭.

승소의 메뉴는 비빔국수, 열무국수, 미역옹심이국수 등 세 가지다. 식당에서 직접 파는 게 아니라, 조계사를 방문해 매점에서 파는 식권을 사와야 먹을 수 있는 일종의 사찰 구내식당이다. 한 그릇 값은 4000원. 비싼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공짜도 아니다. 토진 스님의 독특한 '중도(中道) 실천 생산불교' 주장이 반영됐기 때문이다. '중도'란 유(有)와 무(無), 고(苦)와 낙(樂) 등의 대립과 집착을 떠나 올바르게 판단하고 행동하는 것을 뜻하는 불교의 근본적인 가르침이다.

스님은 "흔히 오해하지만 '승소'는 수익사업이 아니다. 불교적 관점에서 수익이란 곧 다른 사람의 손해이기 때문에 옳지 않은 일"이라고 했다. "국수가격 4000원도 딱 원가만 받도록 정했습니다. 지금 세상에서는 생산도 소비도 허영과 탐욕으로 가득 차 있어요. 적절한 값에 적절한 제품으로 욕심부리지 않는 생산과 지혜로운 소비를 불자들이 스스로 깨쳐가도록 하고 싶습니다. "

국수가 맛있다고 소문이 나면서 반응은 좋은 편이다. 하루 평균 120~130그릇을 팔고, 조금씩 판매도 늘고 있다. 사실 하루 200그릇은 팔아야 수지가 맞지만, 일을 벌여놓은 토진 스님은 "결국 다들 이 공간을 좋아하게 될 것"이라며 느긋하다. "사람들은 결국 분에 넘치는 사치나 허영이 아니라 몸에 맞는 적정한 가격과 서비스에서 편안함을 느끼기 때문"이란다.

스님의 '중도 실천 생산불교론'이 이어졌다. "왜 커피 한 잔에 밥값보다 비싼 5000~6000원씩 줘야 하나요. 욕망이 부른 과잉 생산과 과잉 소비 때문입니다. 비싼 커피를 마시려면 다른 데서 더 많은 돈을 벌어야 합니다. 집착의 악순환이에요." 조계사 안 쉼터 매점에서는 요즘 한 잔 1000원짜리 더치커피(찬물에 오래 우려내 카페인이 적은 커피)를 팔고 있다. 이 커피 역시 딱 원가다. 요즘은 주변 종로통 직장인들까지 몰리면서 점심시간이 끝나기도 전에 매진되기 일쑤다.

토진 스님은 국숫집이 본궤도에 오르면 내년부터는 사찰음식 전문가 스님들과 협력해 몸에 좋은 진짜 사찰음식도 싼값에 선보일 계획이다. 현재 조계사 안에 운영 중인 도자기 전기 가마를 활용해 도자기 판매도 시작하려 한다. 천연염색 사업도 계획 중이다. 옷 한 벌에 수십만원씩 하는 전시용 천연염색이 아니라, 적당한 값에 서민들도 사 입을 수 있도록 하려 한다.

'경기가 좋지 않다는데 혹시 주변 식당·카페들이 영향을 받지는 않겠느냐'고 묻자 토진 스님은 오히려 "영향을 끼치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중도의 소비와 중도의 생산이 확산돼야 합니다. 자신을 망쳐가면서 돈을 벌고 쓰면, 주변도 망치고 세상도 망칩니다. 그런 악순환을 막는 것이 조계사처럼 도심에 위치한 수행도량이 할 일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