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만원짜리 교통딱지 소송, 변호사가 이겼다

"이제 시작입니다. 앞으로 즉결심판 제도의 문제점을 여러가지 방식으로 알리고, 바로잡고 싶습니다. 그게 4만원짜리 딱지 때문에 제가 싸운 이유니까요."

경찰관에게 억울하게 교통 위반 딱지(범칙금 스티커)를 떼였다며 소송을 벌여온 조영준(51) 변호사가 항소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다. 작년 8월 초 교통경찰관에게 4만원짜리 교통 위반 딱지를 떼인 뒤, 즉심(卽審)에 나가고 정식재판을 청구하며 1년 가까이 '법정투쟁'을 벌인 결과다.

서울서부지법 형사1부(재판장 이인규)는 작년 8월 6일 오후 6시 36분쯤 서울 서대문구 독립문 네거리 부근에서 경찰이 부과한 교통 위반 범칙금에 불복해 정식재판을 청구한 조 변호사에 대한 항소심에서, 유죄였던 1심 판결을 뒤집고 무죄를 선고했다고 22일 밝혔다.

경찰은 조 변호사가 독립문 네거리에서 '교차로 통행 방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범칙금 4만원을 부과했다. 교차로에 들어서기 50m쯤 앞쪽에 별도의 우회전용 차량 진행로가 있는데도, 이를 지나쳐서 좌회전만 하도록 돼 있는 곳에서 불법 우회전을 했다는 것이다. 이에 조 변호사는 "원래 직진을 하려고 교차로에 들어섰는데 직진이 안 된다고 도로 위에 화살표가 나있기에 우측 차로로 붙어서 우회전한 뒤 돌아가려 했다"며 "법을 위반하지 않았다"고 맞서왔다.

항소심 재판부는 이에 대해 "도로교통법 25조에 '교차로에서 우회전을 할 때는 미리 도로 우측 가장자리를 서행하며 우회전하라'고 돼 있는데 피고인(조 변호사)이 우회전한 곳은 교차로가 맞고 우회전한 방법도 법이 정한 통행 방법 위반이 아니다"며 무죄를 선고한 것이다.

조 변호사는 본지와 통화에서 "대법원 확정판결이 아니기 때문에 말하기 조심스럽다"면서도 "무죄판결 자체보다, 제대로 항의할 기회도 주지 않는 즉심 제도의 문제점이 고쳐지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는 작년에 '딱지'를 떼인 후 경찰에 항의했지만 "범칙금 안 내면 즉심에 넘길 것"이라는 답변을 들었다. 바쁜 시간을 쪼개 경찰이 보낸 즉심 출석 통지서에 씌어있는 날짜에 즉심 법정에 출석했지만, 담당 경찰관이 나오지 않아 헛걸음을 한 일도 있다. 그는 즉심에서 지고 나서 '사서 고생할 것 없이 그냥 4만원 내고 관두자'고도 생각했다고 했다. 하지만 끝까지 따져보자고 마음을 다잡고 정식재판을 청구했다. 시간·비용의 손해는 물론이고 재판에서 지면 전과자가 될 수 있는 '위험한 선택'이었다.

억울하면 재판을 받으라는 식의 범칙금·즉심제도 운용이 방어권과 인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는 지적은 법조계에서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2006년 정부의 사법 개혁 논의 과정에서도 다른 제도로 대체하는 방안이 거론됐으나 경찰 반발로 무산됐다. 조 변호사는 "억울하게 딱지를 떼이는 사람이 0.1%밖에 안 될 수도 있다. 그래도 그들의 방어권은 보장되어야 한다"며 "앞으로 별도 소송을 통해 이 문제를 바로잡는 일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즉결심판

교통법규 위반 등 경미한 범죄에 대해 경찰서장의 청구로 판사가 심리하는 약식재판 절차다. 경찰이 제시한 증거가 곧바로 증거능력을 갖고 검사가 아닌 경찰이 사실상의 기소권을 행사한다는 점에서 형사소송법 원칙의 예외로 분류된다. 즉결심판에서 벌금이나 구류를 받은 사람이 결과에 불복하면 법원에 정식 재판을 청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