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방 美 미술이 주류 되기까지… 드라마틱한 역사가 한눈에

미국 미술의 큰 잔치가 우리 눈을 즐겁게 한다. 덕수궁미술관에서 열리는 '이것이 미국 미술이다'전(9월 25일까지)은 20세기 미국 거장들의 작품을 한눈에 살피게 하는 전시다. 20세기의 미국 미술은 미술사에서도 유례가 드물 정도로 드라마틱하게 전개되었다. 그 역동성을 충분히 체감해볼 수 있는 전시가 '이것이 미국 미술이다'전이다.

20세기 미국 미술의 전개를 전반과 후반으로 나눈다면 그 분기점이 되는 시기는 2차대전이다. 2차대전 이전의 미국 미술은 유럽의 시각에서 볼 때 일종의 '변방 미술'이었다. 일단 주된 스타일 자체가 예스러운 구상 형식이었다. 이 미술이 2차대전 이후 급격히 전위적 색채를 띠더니 금세 세계 미술의 주류로 떠올랐다. 이는 2차대전 이후 초강대국으로 부상한 미국의 지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국력과 국제관계의 변화가 문화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다.

물론 전전(戰前) 미국 미술이 '변방 미술'이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그 창조자들 가운데는 독창적인 천재들이 적지않았다. 에드워드 호퍼, 존 슬론 등이 그들이다. 그들은 옛 형식을 고집하면서도 미국적 정서와 색채를 분명하게 드러내보였다.

슬론은 신문사 일러스트레이터 출신답게 날카로운 저널리스트의 시선을 지녔던 화가다. 이번 전시의 출품작 '그리니치빌리지의 뒷골목'은 슬론이 뉴욕 그리니치에서 살면서 아파트 창 밖으로 본 풍경을 그린 것이다. 고양이와 아이들의 표정 모두 생동감이 넘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림의 진정한 주인공은 그들이 아니라 상단의 빨래다. 뒷골목은 갑갑하고 소외된 공간이지만 그 틈바구니로 빛이 비쳐 오고 수많은 빨래가 휘날리니 그 어떤 어려움에도 무너지지 않을 서민들의 끈끈한 생명력이 느껴진다.

호퍼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고독과 소외감을 가장 잘 표현한 화가로 꼽힌다. 그의 그림을 보노라면 쓸쓸한 정서가 밀물처럼 밀려온다. 도시화와 산업화, 세계대전, 대공황의 숨 가쁜 현실이 그의 화포에서 하나로 어우러져 현대인의 공허한 실존을 드러낸다. 이번 전시에 걸린 '해질녘의 철로'도 그런 공허감을 잘 느끼게 해주는 그림이다.

2차대전 이후 미국 미술은 그야말로 기라성 같은 수퍼스타들의 퍼레이드로 펼쳐졌다. 팝아트의 황제 워홀, 만화 형식을 차용한 리히텐슈타인, 그림과 사물을 결합한 라우센버그, 일상의 사물을 크게 '뻥튀기'한 올덴버그 등 그 대표 주자들이 이번 전시의 주요 면면이다.

워홀의 '코카콜라'는 팝아트의 미학이 잘 살아 있는 작품이다. 팝아트의 아이콘이라고나 할까. 인쇄하듯 판화로 찍은 콜라병은 수공적인 전통 화법과는 거리가 멀다. 그는 이런 말을 했다.

"모든 콜라는 같다. 돈이 있다고 더 맛있는 콜라를 사 마실 수 없다. 대통령이 마시는 콜라나 거지가 마시는 콜라나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마시는 콜라나 맛도 같고, 값도 같다."

워홀과 어깨를 나란히 한 리히텐슈타인은 마티스의 그림을 응용해 만든 '금붕어 어항'을 선보인다. 만화처럼 단순하고 명료해서 보기에 따라서는 '변변찮은' 작품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시대의 가볍고 경쾌한 감각, 인스턴트적인 감수성을 이 작품보다 잘 담아내기는 쉽지 않다.

그동안 유럽 미술의 전개를 개관하는 전시는 여러 차례 있었지만 미국 미술사를 집중적으로 다루는 전시는 거의 없었다. 그런 점에서 20세기 미국 미술의 역동적인 발자취를 좇는 이번 전시는 그 실체를 우리 눈으로 직접 확인해볼 수 있는 아주 특별한 기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