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회 LG배 세계기왕전] 耳赤의 手

〈제5보〉(75~88)=개막 전야제(前夜祭). 중국 출전기사들의 테이블을 돌던 사회자가 쿵제에게 물었다. "현재 세계 1위는 누구일까?" "음…옆에 앉은 구리(古力)도 강하지만 그래도 최강자는 역시 나다." 사회자가 구리에게 다가갔다. "주량이 엄청 세다지?" 구리는 즉각 이렇게 받았다. "술보다는 바둑이 더 세다. 내가 우승할 거다." 판에 박은 겸양으로 일관하던 기사들도 '흥행'에 동참하기 시작했다. 바람직한 일이다.

75 붙임은 타개의 맥점. 궁할 때는 이런 식으로 리듬을 구하는 게 요령이다. 76 뻗음수로는 참고도 1의 젖힘도 가능했다. 13까지 처리해 백의 기분 좋은 흐름이란 결론. 76 자체는 나쁘지 않았는데, 문제는 흑이 83까지 틀을 잡은 뒤의 84였다. '가'로 때려내거나 '나'로 전개할 장면.

85가 호착이었다. 워낙 멋진 곳이어서 상대의 귀를 빨갛게 물들였다는 이적(耳赤)의 수(手) 계열에 들어갈 만한 명점이라고들 했다. 과연 하변 흑의 도생(圖生)과 상변 흑세 확장을 동시에 겨냥하고 있다. 85때 백이 '나'에 두면 흑은 '다' 정도로 노골적 상변 경영에 나설 참이다. 86과 87의 선문답(禪問答) 속에서 화려한 공중전이 무르익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