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에 비친 '모던 조선'] [46] "양식 한 접시에 산이 스무 평!" 놀라 자빠진 시골 관광객

"뒷집 아범 서울 가고, 앞집 어멈 서울 가네… 뒷집 아범 쇠(牛)를 팔고,… 면장따라 서울 가네.… 서울 구경하고 온 이, 장님들의 코길(象) 구경, 무엇하러 서울 가나…" 1929년 10월 10일자 조선일보에 실린 민요 '서울 구경'이다. 너도나도 소 팔아 서울 구경 가지만 장님 코끼리 구경인데 무엇 하러 가느냐고 묻고 있다.

전차와 자동차, 백화점과 엘리베이터, '짜스(재즈)'와 '딴스홀' '네온사인'과 '일류미네이�V(조명)'이 번쩍이는 서울은, 시골 사람들에게는 죽기 전에 한 번은 꼭 가봐야 할 곳이었다. 서울역은 시골 단체 관광객을 끊임없이 쏟아냈다. '서울 구경 하고 싶어 소도적질(1925년 1월 22일자)' 같은 기사가 심심찮았고, 서울 구경 왔다가 노인이나 애를 잃어버리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넋 놓고 구경하다 마누라까지 잃어 경찰에 찾아 달라고 호소할 정도다.(1934년 4월 9일자)

'한적하게 시골서 지내든 신경을 일격에 마비식혀 버리는' 서울은, 잘못하면 '눈 뜨고도 코 떼인다'는 곳이었다. 그래서 시골에서 거금을 들고 서울에 오게 된 한 여인은 '쓰리(소매치기)' 방비책으로 '고무 삭구(콘돔)' 속 지폐 150원을 항문에 넣고 왔다가, 빼내지 못하는 바람에 병원을 찾기도 했다.(1933년 4월 30일자)

1935년 4월 20일부터 6월 10일까지 경복궁에서 조선산업박람회가 열렸다. 이 박람회는 '그다지 크고 깁흔 규모도 아니요, 큰 상점거리를 잠간 이전해 놓은 정도의 것이건만, 금융조합에 빗을 내엿는지 폭등한 곡가의 경기인지', 박람회 개막후 맞은 첫 일요일인 4월 21일에 수만 인파가 몰려 장사진을 이뤘다.(1935년 4월 22일자)

도대체 무슨 구경을 하는지 조선일보가 한 '�[골관광단'의 2박3일을 미행했다. 첫날, 박람회장 구경은 전시 물건들이 그들의 상식 이상의 것이어서 별 관심이 없고, '총을 노아 담배곽 떠러트리는대로 타먹는 소위 유희장'에 빠졌다가, 동물원 구경하러 창경원으로 향했다.(1935년 5월 2일자)

이튿날, 개별여행 시간엔 한 삼류 카페 앞에서 "이게 서양료리집이세… 점심 요기나 허구가세"하며, 당당하게 들어가 '라이스 커레-'를 시킨 두 사람을 관찰했다. 식사 후 여급이 청구한 점심값은 1원. '께주룩 하다가 반도 못먹고 물린' 한 시골양반은, "이 사람, 그것 한 접시에 오십전인가? 산이 스무평일세!"라며 놀라 자빠진다.(1935년 5월 3일자) 서울은 정녕 '눈 뜨고 코 떼이는 곳'이었다.

마지막 날 저녁, 중년단원은 백화점 구경을 하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옥상에 올라 '검은 보료 우에 수업는 금단추로 수노흔 만호장안을 구버보고' 불야성(不夜城) 서울에 찬탄을 금치 못한다. 반면 젊은 단원들은 '신정인육시장(사창가)'으로 향했다. 미행기를 쓴 기자는 "상서롭지 못한 선물(화류병)을 깨끗한 버드나무 선 동리로 가지고 가지 말기를" 빌고 또 빌었다.(1935년 5월 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