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 기사 "아들아, 세계 제패 꿈 이뤄다오"

"내가 캄캄한 어둠 속에서도 절망하지 않고 버텨온 힘이 뭔지 아세요? 딱 두 가지, 바둑과 두 남매입니다. 내 자식이 바둑으로 성공한 인생을 살게 된다면 나는 지금 죽어도 한이 없습니다." 세계시각장애인 바둑대회를 8년 연속 제패해온 '맹인기사' 송중택(51)이 아들 상훈(16·명지중 3)군의 손을 쓰다듬으며 피를 토하듯 말했다.

송씨의 소망은 순조롭게 무르익어가고 있다. 상훈군은 프로기사 예비학교인 한국기원 연구생 4~5조를 오르내리는 막강한 실력이다. 최근엔 제28회 세계청소년바둑선수권대회(8월 13~17일) 시니어부 한국 대표선수로 뽑혀 곧 루마니아로 떠난다. 구리(古力) 박영훈 이영구 강동윤 박정환 천야오예(陳耀燁) 등 세계 최고 스타들이 거쳐 간 대회여서 선발 경쟁이 매우 치열했다. 연구생 40여명이 격전을 치른 결과 상훈군이 우승했다.

그는 대국하는 모습만으로도 감동을 준다. 상대방 착점음과 동시에 두 손으로 판을 덮고 더듬는데, 순식간에 얽히고설킨 흑백 돌들의 배치를 정확히 감지한다. 그러곤 홈이 파여 있는 361개 교차점에 돌을 '꽂아' 넣는다. 흑돌 위엔 돌출 부위가 있어 백돌과 구별한다. 복잡한 수상전이 벌어져도, 패(覇)가 발생해도 한 치 오차도 없다. 이렇게 200여 수를 교환하고 계가까지 마치는 데 1시간이 채 안 걸린다.

그도 10대 시절까지는 건장한 소년이었다. 17세 때 배운 바둑이 3년쯤 지나자 고향(전남 고흥) 일대에 적수가 없어졌다. 잠시 프로기사가 되겠다는 꿈까지 꿨다. 그러던 20대 초반 어느 날 한쪽 눈이 잘 안 보이기 시작했다. 녹내장(綠內障)이라고 했다. 22세 때 양쪽 모두 불빛조차 못 느끼는 전맹(全盲)이 됐다.

32세 때 시각장애인학교서 만나 결혼한 아내가 어디선가 점자 바둑판을 구해왔다. "10년여 만에 다시 바둑을 두게 되리라곤 상상도 못했었다. 점자 바둑판을 얻은 이후 내 인생이 또 한 번 달라졌다."

딸과 아들이 2년 터울로 태어났다. 유치원 때부터 바둑을 시켰다. 못다 피운 자신의 꿈을 이루고 싶다는 뜻도 있었지만, 아이들과 평생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최적의 게임이란 생각에서였다. 한때 프로 진출을 모색했던 딸 단비(18)양은 올해 명지대 바둑학과에 입학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백을 빼앗아간 상훈이는 요즘엔 아버지를 2~3점씩 접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