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만에… 여섯 사내가 돌아왔다

아직은 성인가요가 대세이던 1960년대 중반. 미군 클럽에서 다진 실력으로 무장한 '꽃미남 밴드'가 등장했다. 남자 6명이 뭉쳤다 해서 이름이 '히식스(He6)'였다. 이들이 뛰어난 악기 연주는 물론 완벽한 하모니의 보컬까지 선보이자 젊은이들은 열광했다.

"안녕 하며 떠난 그 님이 (중략) 지금은 어느 하늘 밑에서 초원을 노래하나~"

지난 25일 서울 대학로 서울재즈아카데미 6층 스튜디오. 일렉 기타 전주에 맞춰 초로(初老)의 사내 다섯이 정확한 하모니로 '초원의 사랑'을 불렀다. 1960~70년대 한국 록의 태동을 이끈 '여섯 사내들(히식스)'이 40년 만에 본격 컴백을 선언했다. 이날 본지와 만난 리더 김홍탁(68·서울재즈아카데미 원장)은 "그동안 단발적으로 방송이나 합동 공연에 출연해왔지만 완전한 '재결성'을 선언한 것은 해체 뒤 처음"이라며 "이제 콘서트도 하고 음반도 낼 예정"이라고 했다.

이번 컴백은 '노장+알파의 귀환'이다. 정규 멤버 김홍탁과 정희택(기타), 조용남(베이스), 유상윤과 안정현(키보드), 배수연(드럼)에 객원 멤버 두 명이 가세하기로 했다. 윤복희의 오빠인 윤항기(보컬)와 동시대 록 그룹 바보스 등에서 활동한 김선(퍼커션)이다. 1980년대 '젊음의 행진' 등을 히트시키며 예능PD로 이름을 날렸던 류규만(68)씨는 매니저를 맡기로 했다. 류씨는 "'나는 가수다'와 '세시봉' 열풍은 순수한 음악은 세대를 초월해 사랑받는다는 것을 보여줬다"며 "히식스는 예나 지금이나 멤버 전원이 악기 연주와 작사 작곡, 보컬을 완벽하게 해내는 밴드로 가요계에 만만치 않은 파장을 몰고 올 것"이라고 했다.

멤버들이 아쉬워하는 부분은 솔로곡 '오동잎'으로 유명한 최헌이 최근 암 진단을 받고 투병 중인 점. 히식스 보컬 출신인 최씨도 당초 이번 무대에 함께할 예정이었다고 한다. 김홍탁은 "우리의 컴백 무대는 사실 최헌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며 "최헌도 나처럼 병을 훌훌 털고 일어나 함께 팬들 앞에 설 것으로 믿는다"고 했다.

히식스가 컴백을 결심한 직접적 계기는 리더 김홍탁의 투병이었다. 지난해 폐기흉 수술을 받으며 생사의 고비까지 겪었다는 김홍탁의 말이다. "죽다 살아났죠. 앞으로 뭘 하면서 지내야 진정 행복할까를 진지하게 고민했어요. 멤버들과도 상의해보니 정답은 하나였습니다. 다시 음악하는 것. 다시 시작하고 싶다는 생각이 멤버 모두에게 있었던 거예요." 정희택(63)은 "우리와 같은 시대에 함께했던 세시봉 등 포크 음악이 다시 주목받는 것을 보면서 우리 음악도 새롭게 평가받을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고 했다.

팬들에게 돌아오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을 뿐 멤버들은 "그동안 항상 음악을 잊지 않고 함께 살고 있었다"고 했다. 김홍탁과 조용남은 1995년 문을 연 서울재즈아카데미 원장과 이사로, 유상윤은 명지전문대 실용음악과 교수로 후진을 길러왔다. 가수 정훈희의 오빠인 정희택은 역시 가수 기질을 타고난 딸(제이·J)의 뒷바라지에 힘썼다. 히식스 활동 후 오랜 기간 미국 이민 생활을 한 김선(68)은 "먹고살기 위해 낮에는 이일 저일 다하면서도 밤에는 꼭 클럽 무대에 섰다. 그렇게라도 음악에 대한 갈증을 풀어야 했다. 한국 대중에게만 복귀한 것일 뿐 히식스 멤버들의 음악 활동은 예전 그대로였다"고 했다.

이들은 '팬들을 실망시켜선 안 된다'며 요즘 매일 대학로 연습실에서 3~4시간씩 맹연습 중이다. '물새의 노래' '말하라, 사랑이 어떻게 왔는가를' 같은 히트곡부터, 과거 활동 때 즐겨 연주했던 보그스의 '유 아 마이 스페셜 엔젤(You Are My Special Angel)'등이 주요 레퍼토리다.

조용남(64)은 "요즘 아이돌 밴드들이 TV프로에 나와서 '핸드싱크(악기를 연주하는 흉내만 내는 것)'하는 것을 보면 너무 화가 나서 막 때려주고 싶을 정도다. 우리 땐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은근히 자신들의 '음악적 경쟁력'을 자신했다. 유상윤(62)은 "우리 때 공부할 수 있는 자료라곤 기껏해야 미군 클럽의 LP들이 전부였다. 우리 때 비해 지금 후배 가수들의 환경은 훨씬 좋아졌고 경쟁력도 있다. 다만 쉽게 결성하고 해체하는 걸 보면 희생정신이 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했다.

돌아온 히식스는 다음 달 KBS '콘서트 7080'에 출연해 재결성을 알린 뒤, 9월 경기도 파주를 시작으로 단독 순회공연에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