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는 끝이 아닙니다… 계획 짜세요"

통상 노조(勞組)라고 하면 임금협상 등 노조원들의 복지 향상을 위해 투쟁하는 조직이란 고정관념이 강하다. 그런데 일본 굴지의 통신부품업체인 '세이코엡손' 노조는 노조원들의 자산관리를 목표로 열심히 뛰는 특이한 곳이다. 조합원들이 은퇴 후에 당황하지 않고 제2의 인생을 제대로 설계할 수 있도록 미리 교육도 시키고 재무적인 도움을 주는 것이다. '투쟁하는 노조'가 아니라 '컨설팅하는 노조'인 것이다.

이 같은 노조 혁신을 주도한 인물이 바로 시미즈 마나부(44) 세이코엡손 노동조합 부위원장이다. 그는 최근 미래에셋퇴직연금연구소가 주최한 국제 세미나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

"상근 노조원이 된 이후 임금을 1% 올려보려고 사측과 협상했지만 5년 내내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었습니다. 회사 실적이 나아지지 않는데 더 이상의 임금 투쟁은 무의미했죠. 그래서 생각을 바꿨습니다. 노조원들이 월급을 잘 굴릴 수 있도록 도와주기로요."

시미즈 부위원장은 임금협상에 매달리지 않고, 샐러리맨들이 회사에서 매달 받는 소득을 알뜰살뜰 잘 불릴 수 있게 돕기 위한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대출과 관련한 기초 정보를 담은 소식지를 발간하고, 보험설계 세미나도 열었다. 하지만 생각만큼 순조롭게 일이 풀리진 않았다. 호응은 미미했다.

그가 주도해 연 첫 자산관리 세미나에는 참가자가 5명밖에 안 되어 참담한 실패를 맛봐야 했다. 하지만 그는 이에 실망하지 않고 세미나 활동을 계속해 나갔다. 5년 이상 세미나와 은퇴 교육이 이어지자 회사 내에서 조금씩 입소문이 났고, 조합원들의 관심도 높아졌다.

"노조원들의 은퇴 지원 활동이 노조의 주요 활동부문이 됐습니다. 지금은 노조에 '라이프 서포트국'이라는 조직도 갖췄지요. 전국 방방곡곡을 돌면서 조합원들을 위해 세미나도 열고 강연도 펼칩니다."

그는 은퇴를 앞둔 직장인이라면 반드시 퇴직 후에 뭘 할 것인지 미리 계획을 짜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은퇴 이후에 느낄 수 있는 정신적 공황감을 최소화하려면 미리 제2의 인생을 살기 위한 직업교육이나 취미교육 등에 신경 써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도 조만간 100세 시대를 맞이하게 됩니다. 은퇴는 끝이 아닙니다. 회사를 떠난 뒤 농사를 짓고 싶다면 현재 농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잘 사귀어둬야 합니다. 퇴직하고 나서 당장 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요."

그는 개인 스스로 노후자금 설계에도 힘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저출산과 고령화 추세가 이어지면서 개개인이 버는 소득은 줄어들면 줄어들었지 크게 오르진 않을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나중에 어떻게든 되겠지 아니면 국가가 알아서 해결해주겠지 이렇게 태평하게 생각해선 곤란합니다. 일찍 준비할수록 나중에 더 활짝 웃을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