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초 1초가 온전히 내 것이 되자… 글이 돌아왔다
입력 : 2011.07.29 03:14
시인 곽재구, 인도서 보낸 4665만6000초 '우리가…'에 담아
"걸음마부터 다시 시작한 기분" 산문집으로 9년만에 책 펴내… 미번역 타고르시 9편도 실어
"그 말을 들으니 마음이, 여기가 참말로 뜨거워요."
전남 여수의 돌산대교가 바라다보이는 한 섬마을 식당에서, 시인 곽재구(57)는 가슴께를 자꾸만 어루만졌다. 새로 펴낸 산문집 '우리가 사랑한 1초들'(톨 출간) 때문에 마주 앉은 자리. 9년 만에 펴낸 책이 왜 시집이 아니고 인도에서 쓴 산문집이었는가를 물어본 직후였다. 평상에는 가스불 위에서 갯장어(하모) 냄비 하나가 펄펄 끓고 있었다.
시인은 그동안 썼던 수많은 원고들을 스스로 포기한 완고한 엄격주의자다. 그중에는 교정까지 마친 뒤 내일이면 인쇄 들어갈 책을 출판사의 통사정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순간에 두 번이나 자진 철회한 사례도 있다. 스스로 정한 미학적 성취에 미달했다는 이유였다. "모든 삶은 걸음마부터 시작하는 것 아니오. 걷는 법을 잊어버렸으니 걸음마부터 다시 시작할밖에"라고 나지막이 말하며, 그는 소주 한 잔을 털어넣었다. 사랑도 시옷, 사람도 시옷, 시간도 시옷, 슬픔도 시옷. 세상은 시(詩)의 시옷에서 비롯되었다고 믿는 시 지상주의자가, 10년 남짓 만에 산문집을 먼저 펴내는 데 대한 자괴(自愧)였다.
시인이 책을 내지 못했던 9년은 그가 순천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했던 시간과 온전하게 겹친다. 시집 '사평역에서', 어른을 위한 동화 '아기 참새 찌꾸', 산문집 '예술기행' '포구기행' 등으로 평단과 대중의 사랑을 동시에 받으며 13년간 전업시인으로 살았던 그는 2001년부터 순천대에서 시를 가르쳤다. 그 기간 동안, 이 완벽주의자는 제대로 글을 쓰지 못했다. 그는 "하루 24시간 전부를 작품에 투사할 때 창작의 신이 플러스 알파를 준다고 믿는다"면서 "자신의 시간 중 10%를 쓰면서 예술을 꿈꾸는 건 내게 위선이었다"고 했다.
전남 여수의 돌산대교가 바라다보이는 한 섬마을 식당에서, 시인 곽재구(57)는 가슴께를 자꾸만 어루만졌다. 새로 펴낸 산문집 '우리가 사랑한 1초들'(톨 출간) 때문에 마주 앉은 자리. 9년 만에 펴낸 책이 왜 시집이 아니고 인도에서 쓴 산문집이었는가를 물어본 직후였다. 평상에는 가스불 위에서 갯장어(하모) 냄비 하나가 펄펄 끓고 있었다.
시인은 그동안 썼던 수많은 원고들을 스스로 포기한 완고한 엄격주의자다. 그중에는 교정까지 마친 뒤 내일이면 인쇄 들어갈 책을 출판사의 통사정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순간에 두 번이나 자진 철회한 사례도 있다. 스스로 정한 미학적 성취에 미달했다는 이유였다. "모든 삶은 걸음마부터 시작하는 것 아니오. 걷는 법을 잊어버렸으니 걸음마부터 다시 시작할밖에"라고 나지막이 말하며, 그는 소주 한 잔을 털어넣었다. 사랑도 시옷, 사람도 시옷, 시간도 시옷, 슬픔도 시옷. 세상은 시(詩)의 시옷에서 비롯되었다고 믿는 시 지상주의자가, 10년 남짓 만에 산문집을 먼저 펴내는 데 대한 자괴(自愧)였다.
시인이 책을 내지 못했던 9년은 그가 순천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했던 시간과 온전하게 겹친다. 시집 '사평역에서', 어른을 위한 동화 '아기 참새 찌꾸', 산문집 '예술기행' '포구기행' 등으로 평단과 대중의 사랑을 동시에 받으며 13년간 전업시인으로 살았던 그는 2001년부터 순천대에서 시를 가르쳤다. 그 기간 동안, 이 완벽주의자는 제대로 글을 쓰지 못했다. 그는 "하루 24시간 전부를 작품에 투사할 때 창작의 신이 플러스 알파를 준다고 믿는다"면서 "자신의 시간 중 10%를 쓰면서 예술을 꿈꾸는 건 내게 위선이었다"고 했다.
◆인도 산티니케탄에서의 540일
시인은 얼굴이 홧홧하다고 했지만, 이번 산문집 '우리가 사랑한 1초들'은 처절하면서도 아름답다. 2009년 7월부터 2010년 12월까지 인도 산티니케탄에서 지낸 540일 동안의 악전고투. 동시에 소박하지만 우리가 놓치고 있는 아름다운 삶을 지키고 있는 마을 사람들에게 보내는 연서(戀書)이기도 하다. 시성 타고르의 땅인 이 인도 서북부 대학 마을은 폭염이 지배하는 곳. 여름 낮이면 평균기온이 49도, 심하면 52도까지 치솟았다. 시인은 "난생처음 별에게 욕을 퍼부었다"고 했다. 마을사람들의 희망은 드물게 찾아주는 빗방울인데, 초롱초롱한 별은 그 소망을 무참히 짓밟는 신호였으니까. 그는 "더위를 잊기 위해서는 무언가에 집중해야만 했고, 내게는 그 무엇이 글쓰기였다"면서 "그날그날을 기록했던 정직했던 시간이었고, 다시 책을 낼 수 있었던 까닭"이라고 했다.
2009년 7월, 처음 한 달은 무더위로 온몸에 땀띠가 나고 얼굴과 목, 입술까지 부어오르는 횡액을 겪었다. 하지만 곧 산티니케탄의 시간에서 향기가 나기 시작했다. 길을 걸어가면 두 팔 벌려 '아마르 본두, 나의 친구여!'라고 환영하고, 심지어 동네 강아지들마저도 꼬리 치며 환영하는 곳, 은은한 숲의 꽃향기와 연두색 햇살, 외견상 지극히 가난했지만 아무도 가난에 대해 구차스러워하지 않는 사람들. 시인은 "하루 24시간 8만6400초를 다 기억하고 싶었던 스무 살 때 이후, 생애 두 번째로 내 삶의 1초 1초 들이 나를 향해 달려오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그렇게 540일, 4665만6000초의 시간을 온전히 받아들이자, 다시 글이 돌아왔다. '우리가 사랑한 1초들'에는 산티니케탄의 어떤 1초가 무슨 빛깔의 몸을 지녔는지, 어떤 1초는 누구와 사랑에 빠졌는지, 어떤 1초는 왜 깊은 한숨을 쉬는지, 우리는 어떤 1초들을 잃어버리고 살고 있는지가 시인의 투명한 문장으로 적혀 있다.
◆따뜻하고 포근한 위로의 바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 시인과 함께 순천의 와온(臥溫) 포구에 들렀다. 따뜻하게 누운(臥溫) 바다. 시인의 결핍을 채워줬던 마음의 고향. 그는 "목표 지향인 야망의 사내들에게는 한없이 심심한 바다겠지만, 상처 입은 영혼들에게는 더없이 포근한 위로의 바다"라고 했다. 시인의 굴곡 많은 과거가 계통 없이 떠올랐다. 부모가 생존해 있는데도 '천사의 집'을 찾아야 했던 유년 시절, 친척집 꼴머슴살이를 해야 했던 지독한 가난, 교과서 한 줄 안 보고 시집만 들고 다녔던 광주일고 시절, 군복무 당시 서치라이트를 돌리는 보직을 맡자 그 광선으로 시를 썼다는 전설 같은 일화,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로 시작했던 그의 등단작 '사평역에서'(1981), 당대의 문학기자였던 김훈이 그 작품을 영어로 번역해서 "한국 시의 최전선"이라며 발표했던 아시아 문학기자 포럼, '예술기행' '포구기행' 등 100만 부 가까이 사랑받았던 베스트셀러들….
찾는 이 거의 없었던 외로운 바다 와온은, 10년 전 시인이 글로 소개한 이후 전국에서 찾아온 인파로 최근에는 관광안내사무소까지 새로 생겼다. '우리가 사랑한 1초들' 이후 인도 산티니케탄이 한국인들에게 순례지가 된 와온 포구처럼 될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의 글을 읽고 나면 마음이 따뜻해진다는 것. 따뜻할 온(溫)을 풀어쓰면, 물이 사람의 입으로 들어가면 피로 변한다는 뜻이다. 시인의 손이 뜨거웠다.
시인은 얼굴이 홧홧하다고 했지만, 이번 산문집 '우리가 사랑한 1초들'은 처절하면서도 아름답다. 2009년 7월부터 2010년 12월까지 인도 산티니케탄에서 지낸 540일 동안의 악전고투. 동시에 소박하지만 우리가 놓치고 있는 아름다운 삶을 지키고 있는 마을 사람들에게 보내는 연서(戀書)이기도 하다. 시성 타고르의 땅인 이 인도 서북부 대학 마을은 폭염이 지배하는 곳. 여름 낮이면 평균기온이 49도, 심하면 52도까지 치솟았다. 시인은 "난생처음 별에게 욕을 퍼부었다"고 했다. 마을사람들의 희망은 드물게 찾아주는 빗방울인데, 초롱초롱한 별은 그 소망을 무참히 짓밟는 신호였으니까. 그는 "더위를 잊기 위해서는 무언가에 집중해야만 했고, 내게는 그 무엇이 글쓰기였다"면서 "그날그날을 기록했던 정직했던 시간이었고, 다시 책을 낼 수 있었던 까닭"이라고 했다.
2009년 7월, 처음 한 달은 무더위로 온몸에 땀띠가 나고 얼굴과 목, 입술까지 부어오르는 횡액을 겪었다. 하지만 곧 산티니케탄의 시간에서 향기가 나기 시작했다. 길을 걸어가면 두 팔 벌려 '아마르 본두, 나의 친구여!'라고 환영하고, 심지어 동네 강아지들마저도 꼬리 치며 환영하는 곳, 은은한 숲의 꽃향기와 연두색 햇살, 외견상 지극히 가난했지만 아무도 가난에 대해 구차스러워하지 않는 사람들. 시인은 "하루 24시간 8만6400초를 다 기억하고 싶었던 스무 살 때 이후, 생애 두 번째로 내 삶의 1초 1초 들이 나를 향해 달려오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그렇게 540일, 4665만6000초의 시간을 온전히 받아들이자, 다시 글이 돌아왔다. '우리가 사랑한 1초들'에는 산티니케탄의 어떤 1초가 무슨 빛깔의 몸을 지녔는지, 어떤 1초는 누구와 사랑에 빠졌는지, 어떤 1초는 왜 깊은 한숨을 쉬는지, 우리는 어떤 1초들을 잃어버리고 살고 있는지가 시인의 투명한 문장으로 적혀 있다.
◆따뜻하고 포근한 위로의 바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 시인과 함께 순천의 와온(臥溫) 포구에 들렀다. 따뜻하게 누운(臥溫) 바다. 시인의 결핍을 채워줬던 마음의 고향. 그는 "목표 지향인 야망의 사내들에게는 한없이 심심한 바다겠지만, 상처 입은 영혼들에게는 더없이 포근한 위로의 바다"라고 했다. 시인의 굴곡 많은 과거가 계통 없이 떠올랐다. 부모가 생존해 있는데도 '천사의 집'을 찾아야 했던 유년 시절, 친척집 꼴머슴살이를 해야 했던 지독한 가난, 교과서 한 줄 안 보고 시집만 들고 다녔던 광주일고 시절, 군복무 당시 서치라이트를 돌리는 보직을 맡자 그 광선으로 시를 썼다는 전설 같은 일화,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로 시작했던 그의 등단작 '사평역에서'(1981), 당대의 문학기자였던 김훈이 그 작품을 영어로 번역해서 "한국 시의 최전선"이라며 발표했던 아시아 문학기자 포럼, '예술기행' '포구기행' 등 100만 부 가까이 사랑받았던 베스트셀러들….
찾는 이 거의 없었던 외로운 바다 와온은, 10년 전 시인이 글로 소개한 이후 전국에서 찾아온 인파로 최근에는 관광안내사무소까지 새로 생겼다. '우리가 사랑한 1초들' 이후 인도 산티니케탄이 한국인들에게 순례지가 된 와온 포구처럼 될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의 글을 읽고 나면 마음이 따뜻해진다는 것. 따뜻할 온(溫)을 풀어쓰면, 물이 사람의 입으로 들어가면 피로 변한다는 뜻이다. 시인의 손이 뜨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