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세상] 집안 반대로 야구를 접어야 했던 소년… 47년뒤 프로야구 首長 되다

47년 전, 아버지의 뜻을 거스르지 못하고 배트와 글러브를 놓아야 했다. 하지만 소년의 야구 사랑은 환갑이 지난 지금까지 한결같다. 그 인연이 결실을 보았다.

구본능(62) 희성그룹 회장이 한국 프로야구를 이끌 수장(首長) 자리에 오른다. 구 회장은 2일 서울 강남구 도곡동 야구회관에서 열린 KBO(한국야구위원회) 이사회 결과 만장일치로 제19대 총재 추천을 받았다. 구 회장은 다음 주 열릴 구단주 총회에서 총재로 공식 선출될 예정이다. 구 회장은 유영구 전 총재의 잔여 임기(12월 31일)를 채우고, 내년부터 20대 총재로 3년 동안 직무를 이어가게 된다. 지방에서 휴가 중인 구 회장은 "총재를 맡아 해보겠다"는 뜻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구 회장은 경남중학교 시절 선수로 뛰었다. 대한야구협회에 정식 등록한 '야구선수' 출신이 KBO 총재가 되는 것은 프로야구 출범 30년 만에 처음이다. 또 역대 총재 12명 중에서 고(故) 박용오 총재(12~14대), 유영구 총재(17~18대)에 이어 세 번째로 KBO가 자율적으로 뽑은 민선 총재가 된다.

구 회장은 구본무(67) LG그룹 회장의 동생이며, 프로야구 LG트윈스의 구단주인 구본준(60) LG전자 부회장의 형이다. 야구 명문인 경남고와 고려대(경영학과)를 나왔다. 구 회장의 경남고 동문인 허구연(60) MBC 해설위원은 "구 회장이 중학교까지는 주전 외야수로 뛰다가 고등학교에 들어오면서 부친의 반대로 운동을 그만뒀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야구에 대한 구 회장의 애정은 남다르다. LG트윈스 고문, 한국스포츠사진연구소 이사장을 맡고 있는 그는 2005년에 '사진으로 본 한국야구 100년'을 출간했다. 야구 관련 사진을 모으는 것이 취미였는데, 스포츠 사진작가와 야구계 원로들로부터 자료들을 받아 12만여점의 사진이 모이자 그중 800여점을 사건·연대·분야별로 추려 책을 냈다. 당시 구 회장은 "야구 자료가 6·25전쟁 후 많이 없어졌다. 어렵고 힘들던 시절 야구가 우리에게 큰 힘을 주었던 추억과 기억을 되살릴 수 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2006년 원로 야구인들의 모임인 일구회에서 대상을 받았을 땐 "앞으로도 더 야구 발전에 기여하라는 사랑의 매로 받아들이겠습니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구 회장은 2007년 재개장한 장충 리틀야구장에 사비 3500만원을 들여 전자식 전광판을 기증했다.

구 회장은 자주 잠실 구장을 찾아 프로야구 LG트윈스의 경기를 본다. 백순길 LG트윈스 단장은 "홈 경기의 60~70%는 보러 온다. 대화를 해보면 야구 지식이 대단하다는 걸 알게 된다"고 말했다.

구 회장은 지금도 가끔 고교 동문 중심으로 열리는 사회인 야구 경기에 나선다. 본인은 "물 당번(후보)이 주임무다. 볼 보이로 뛰거나 그라운드에 선도 긋는다"고 농담하지만, 내야수, 외야수를 가리지 않고 그라운드에 선다는 사실 자체를 즐긴다.

구 회장은 만성적인 적자(赤字)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프로야구 구단을 흑자 기업으로 바꿀 능력을 갖춘 전문 경영인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럭키금성 상사와 금성통신, 금성사(현 LG)를 거쳐 1995년부터 희성그룹 회장으로 기업을 운영하고 있다. 희성그룹은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이 경영권을 큰아들인 구본무 회장에게 넘겨주면서 독립시켜 만들었다. 희성전자가 주축이며, 금속·화학 등의 계열사가 있다. 구 회장은 경제 전문지 포브스가 선정하는 2011 세계 부호 순위에서 1057위(재산 1조1566억원)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