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도심 속 유적들 옛 모습을 만나보세요

서울은 항상 그 자리에 있지만 서울을 채우는 풍경들은 서서히 바뀌었다. 굴곡 많은 현대사 풍랑(風浪) 속에 제 모습을 잃은 도심 속 유적들은 셀 수 없이 많다. 기억과 기록에만 남아 있던 이 사물들이 서울시와 각 구청 노력으로 다시 살아나고 있다. 담당자들은 "단순한 '옛 모습 찾기'가 아니라 선조들 자부심과 혼을 살려 '과거를 통해 현재와 미래를 바라보는 거울'을 세우는 일"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시는 지난해 1월 '4대문안 종합 보존계획'을 발표하고 문화재 지표 조사를 거쳐 유적 721건에 대한 조사를 마쳤다. 백호 서울시 행정과장은 "각 자치구가 벌이는 문화재 복원 노력은 단순히 경제성이나 도시 미관 차원이 아니라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역사 도시로서 서울을 계승하는 작업"이라고 말했다.

◆조선시대 절경(絶景) 복원

종로구 옥인동 옥인시범아파트 자리는 원래 조선 후기 겸재 정선 진경산수화에 등장한 '물소리가 유명한 계곡' 수성동(水聲洞)이었다. 1971년 옥인시범아파트가 들어서며 회색 콘크리트로 뒤덮였으나 2009년부터 철거에 착수, 내년 5월까지 인왕산 자락을 포함한 1만7007㎡에 소나무 등 전통 수목을 심고, 옛 정취를 살리는 공사를 펼친다. 네모난 정자 '사모정'을 만들고, 계곡 중간 중간에 징검다리와 목교도 설치한다.

한명회가 여생(餘生)을 보낸 별장으로 알려진 '압구정(狎鷗亭)'도 강남구가 2009년 모은 '압구정 복원 자문위'를 통해 고증을 거쳐 원형을 살리기로 했다. 지금은 압구정 현대아파트 72동과 74동 사이에 '압구정' 터 지석(誌石)만 있다.

도봉산 등산길 입구에 자리 잡은 '도봉서원'. 1573년 조광조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한 곳으로 서울에서 유일하게 남은 서원이다. 도봉구는 서울시문화재 28호인 이곳을 2014년까지 발굴 조사와 재건을 끝내 500년 전 모습을 살려볼 예정이다.

◆삼국시대 격전지도 부활

강남구 일원동 산 63번지 대모산 정상에 584m 둘레로 쌓은 대모산성. 정확한 축조 시기·성격은 가려져 있지만, 신라~고려시대 방어체계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대모산성을 중심으로 풍납토성, 몽촌토성, 남한산성 등이 일직선상에 퍼져 있기 때문이다. 강남구는 등산로, 삼림 등에 의해 훼손된 지역을 복원하고 성벽을 다시 노출해 역사적 의미를 높이기로 했다. 문화재로도 신청할 방침.

서울~구리시에 걸쳐 있는 아차산 남쪽 구릉 정상부에는 표주박을 엎어 놓은 듯한 봉우리 2개가 있다. 고구려시대 최남단 군사기지 지휘부로 알려진 이곳은 홍련봉 제1·2보루. 2004년 발굴 조사를 통해 고구려시대 와당(瓦當·기와) 등 수많은 유물이 나와 사적 455호로 지정됐다. 광진구는 내년부터 추가 발굴과 복원 설계를 거쳐 조선시대 서울 성곽이 이어지는 2014년까지는 모든 공사를 마칠 예정이다.

◆일제 강점기부터 근대 유산도 재건

제사가 끝나고 설렁탕을 끓여 먹었다고 알려진 국가사적 436호 동대문구 제기동 선농단(先農壇). 조선 농경문화와 제례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유산이다. 일제강점기 친경(親耕)의식이 없어지고 근대화를 겪으며 어린이놀이터로 변한 이곳을 동대문구가 역사공원으로 정비할 방침이다. 현재 설계 공모를 진행 중이며, 내년까지 마무리할 계획이다.

그 자체로 역사인 정부 수반 가옥과 청사들도 하나 둘 원형을 되찾고 있다.

중구 신당5동에 있는 박정희 대통령 가옥은 박 대통령이 1958년 사들여 1961년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관사로 들어가기 전인 3년간 가족과 함께 산 곳이다. 1930~40년대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올해 말까지 원형 복원 공사와 전시 공간 조성이 끝난다.

10·26 이후 잠시 대통령직을 맡았던 최규하 대통령 가옥은 서교동 467-5에 있다. 지하 1층·지상 2층 복층 복열형 도시주택인데, 1972년 최 대통령이 직접 건축, 2006년 서거할 때까지 살았다. 연탄보일러, 흰 고무신, 30년 된 라디오 등 검소한 생활상과 유품을 그대로 보존했다. 2009년 7월 서울시가 매입, 올해 말까지 1980년대 전후 모습으로 되돌려놓을 예정이다.

해방 이후 임시정부 청사로 사용하던 강북삼성병원 내 경교장(京橋莊)도 지난해 6월 병원시설을 옮기고 전문가 자문을 거쳐 내년까지 그 당시 모습으로 복원하고, 임시정부와 김구 선생 활동상, 경교장 역사 등을 알리는 전시 공간으로 바뀐다. 그 전에는 강북삼성병원 본관이었다. 종로구 이화동 이승만 초대 대통령 사저 '이화장'과 안국동 '윤보선 고가(古家)'도 2013년 말까지 복원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