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 소리 나는 CG 침팬지 연기… '아바타' 넘은 CG의 진화

'반지의 제왕' '아바타' 등으로 아카데미 시각효과상을 5번이나 수상한 시각효과사(社) 웨타 디지털(Weta Digital)이 컴퓨터그래픽(CG)의 한계를 또 한 단계 넘어섰다.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에서 실제 침팬지는 한 마리도 촬영하지 않은 채 오직 CG로만 영화 속 침팬지를 수백 마리 빚어낸 것이다. 영화는 이전 '혹성탈출'의 뼈대인 인간이 침팬지에게 지배당하게 된 경위를 설명하는 프리퀄(prequel·유명한 이야기나 영화의 이전 이야기를 다룬 속편)이다.

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과학자 윌(제임스 프랭코)은 자신이 개발한 뇌기능 회복약을 침팬지에게 주입하는 임상실험을 하고 있다. 하지만 사고로 침팬지들이 모두 죽고 신약 개발도 중단된다. 살아남은 것은 그중 하나가 낳은 아기 침팬지 시저(앤디 서키스)뿐. 윌이 시저를 집으로 데리고 오면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전개된다.

1963년 소설 출판 이후 영화로만 6차례 제작된 만큼 줄거리는 뻔하다. 극적인 반전(反轉)도 없다. 하지만 실사(實寫)처럼 보이는 CG 침팬지의 연기력이 관객을 압도한다.

또래 인간보다 지능이 좋은 침팬지 시저는 영화 속에서 윌과 눈을 맞추며 정신적으로 교감한다. 자신이 애완동물인지 가족인지, 정체성도 고민한다. 대사 없이 표정과 동작만으로 100% 전달된다. 시저 역의 앤디 서키스가 세트장에서 다른 배우들과 눈을 맞추며 함께 연기한 덕이다. '아바타'보다 한 단계 진보한 CG 촬영기술이라고 한다.

영화에서 기술보다 중요한 것은 시나리오다. SF영화인데도 현실성이 묻어난다. 유전자 치료제 개발 등 실제 일어난 일을 적극적으로 다뤘고, 시간여행 등 이전 '혹성탈출' 시리즈의 비현실적인 부분을 과감히 삭제한 덕이다.

할리우드가 만든 여름용 블록버스터치고 규모가 작은 점은 아쉽다. 침팬지 무리와 인간들이 격돌하는 금문교 전투신은 장엄하면서도 신나지만, 그게 전부다.

하지만 영화적인 짜임새만 놓고 보면 올여름 블록버스터 중 최고 수준이다. 할리우드에선 신인인 루퍼트 와이어트 감독은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연출로 '혹성탈출'에 새 생명을 부여했다. 속도감 있는 편집 덕에 다 아는 내용인데도 106분 동안 숨 돌릴 틈이 없다.

영화 후반부 스쳐 지나가는 TV 화면에서 화성에 유인우주선이 발사되고 실종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속편을 암시하는 장면이다. 17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이것이 포인트

#장면

영장류 보호소에 갇힌 시저가 자신을 위협하는 사육사에게 ‘노(No)’라고 외치는 장면. 혁명의 시작을 상징적으로 표현했다.

#해외평

“현명한 각본, 인상적인 연기, 엄청나게 멋진 연출이 합쳐져 원작을 멋진 여름 축제로 재탄생시켰다.”(LA타임스)

#이런 분들 보세요

짜임새 없이 스케일로만 승부하는 블록버스터에 지쳤다면. ‘트랜스포머3’의 극악무도한 152분 러닝타임에 없던 요통까지 생겼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