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돈 쏠렸던 자문형랩(특정 소수 종목에 집중투자) 운용사가 폭락 주도"

자문사들은 손실이 20~25% 나면 주식을 처분한다는 손절매 기준을 마련해놓고 있다. 한 대형 증권사 펀드매니저는 8일 "오늘 몇 종목이 로스컷에 걸려 100억원어치를 눈물을 머금고 팔았다"며 "자문사들도 대부분 어쩔 수 없이 팔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작년부터 급속 성장한 자문형랩의 운용 규모는 9조원대에 달한다. 자문사가 보유 종목의 3%씩만 팔아도 2700억원이라는 규모가 나온다.

자문형랩이 40~50개 종목에 분산 투자하는 펀드와 달리 15개 안팎의 소수 종목에 집중 투자한 바람에 부작용이 심각하다는 것은 연초부터 제기되어온 위험 요소였다. 상승장에서는 이익을 많이 낼 수 있지만, 하락장에서 거액 매물을 쏟아내면 폭락을 가중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자산운용사 펀드매니저는 "이번 폭락장에서 자문형랩의 폐해가 단적으로 드러났다"며 "개인들의 투매를 부추길 수도 있어 금융 당국의 관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 투자자문사 대표는 "선물옵션 투자자 중 주식을 담보(증거금)로 거래하다가 주식 가치가 하락하면서 증거금이 모자라게 되자 보유한 주식이 강제로 매매되는 바람에 매도량이 늘어난 점도 영향을 끼친 것 같다"고 말했다.

자문사들이 '블랙 먼데이'를 주도했다?

8일 코스피지수가 74.3포인트(3.82%) 폭락하면서 증시가 공황 상태에 빠졌다. 닷새 동안 252.82포인트(11.9%), 시가총액 170조원이 증발했다. 그러나 8일 증시 하락을 주도한 세력은 지난주와 달랐다. 지난 2~5일 나흘간은 외국인이 매일 4000억~7000억원, 총 2조원을 순매도하며 지수 하락을 주도했다. 개인은 이 기간 1조3000억원대를 순매수했다. 그러나 8일은 상황이 바뀌었다. 외국인의 순매도는 800억원대로 주춤해졌지만, 개인은 팔아치운 주식이 사들인 주식보다 7000억원 많았다. 거래소에서 '개인' 자금은 '개미 투자자'들의 자금 외에도 투자자문사의 자문을 받아 운용되는 자문형랩(맞춤형 주식관리 계좌)이 포함돼 있다.

이 때문에 이날 증시 하락을 주도한 장본인으로 자문사들이 지목되고 있다. 실제 이날 개인이 거액을 순매도한 상위 종목에는 현대차·기아차·LG화학·SK이노베이션 등 그동안 자문사들이 집중 투자했던 이른바 '차·화·정(자동차·화학·정유)'이 대거 포함돼 있었는데, 이 종목들은 최근 5일간 10~20% 폭락했다.

이 때문에 자문사들이 그동안 많이 올랐던 주식을 팔아 차익 실현에 나서는 동시에, 최근 자문형랩에 가입한 고객들의 추가 손실을 막기 위해 로스컷(loss cut·손절매·하락장에서 손실을 감수하고 주식을 매도하는 것)에 나서면서 증시를 폭락시켰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실제 증시 폭락 3일째인 지난 4일부터 자문사들이 특정 건설·화학·유통주를 전량 매도하고 있다는 소문이 증권업계에 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