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제주 토속별미기행
입력 : 2011.08.09 12:50
<김형우 기자의 맛있는 여행>
여름 제주도를 찾으면 뭘 먹게 되나? 고등어, 갈치, 흑돼지…? 맛은 있으되 참신하지는 않다.
무릇 한 지방을 여행한다면 그곳의 토속 별미를 맛보는 것도 큰 문화체험이 된다. 제주 토박이들은 여름철 나름 소박한 별미를 즐긴다. 육지 것처럼 자극적이고 화려하지는 않지만 제주산 신토불이 식재료로 여름 입맛을 달랜다.
부잣집에서 즐겼다는 담백한 '꿩메밀칼국수'나 서민 음식의 대명사격인 '고기국수'는 제주의 대표 여름 별식이다. 또 싱싱한 자리를 매콤달콤하게 무쳐낸 '자리강회', 콩과 마늘지를 넣고 얼큰하게 조린 '우럭조림'도 빼놓을 수없는 여름 별미에 속한다. 속이 편안해지는 전통의 '메밀 빙떡'과 요즘 등장한 '꽁치 김밥'은 여행길에 시장기를 속여줄 훌륭한 간식거리이다. 제주 토박이 추천, 여름에 맛보면 좋을 제주의 토속별미를 소개한다. 제주=글·사진 김형우 기자 hwkim@sportschosun.com
<제주의 여름 별미>
1. 꿩메밀칼국수
제주 사람들의 대표 여름 별미 중 하나는 '꿩메밀 칼국수'다. 제주의 특산물인 꿩과 메밀을 활용한 음식이다. 제주는 예로부터 '꿩사냥'이 성행할 정도로 꿩이 많다. 또 구좌읍 한동리, 애월읍 남읍리 등 제주의 척박한 돌밭에서는 메밀이 연중 두 차례씩 수확된다.
이처럼 제주 토박이들은 제주섬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식재료를 사용해 여름철 소박한 미식거리를 챙겼다. 그 중 꿩메밀칼국수가 으뜸이다. 꿩육수에 메밀칼국수를 넣고 걸쭉 담백하게 끓여 내는데, 국물 맛이 일품이다.
꿩메밀칼국수의 맛을 내는 비결은 육수에 있다. 꿩을 통째로 삶아 고기를 건져 낸 후 살은 발려 메밀국수 웃기로 사용한다. 뼈를 다시 고기 삶은 물에 넣고 소금, 생강, 대파를 추가한 뒤 은근한 불로 네댓 시간 더 우려내면 비로소 시원 구수한 육수가 만들어진다.
메밀면도 맛을 내는데 빼놓을 수 없다. 메밀은 본래 점성이 적어 면을 뽑기가 쉽지 않다. 그럼에도 이 집은 100% 순메밀가루만을 쓴다. 때문에 가벼운 젓가락질에도 면이 툭툭 끊긴다.
이 집 꿩메밀칼국수는 제법 손이 많이 간 음식이다. 반죽에서부터 면썰기 등 모든 과정을 직접 주인 손으로 해내기 때문이다. 반죽을 얇게 밀어 가지런하게 썬 다음 팔팔 끓는 육수에 메밀면, 무채, 삶아 찢어 둔 꿩고기를 넣고 끓인다. 이후 소금과 참기름을 넣고 간을 맞춘 다음 그릇에 담아 깻가루와 잔파를 얹어 마무리한다.
맛이 궁금하다. 우선 국물을 한 숟갈 뜨자 입안에 척 감긴다. 바지락 칼국수처럼 시원한 맛과는 또 다른, 부드럽고 구수하다. 꿩육수와 메밀, 그리고 참기름의 어우러짐이 그야말로 담백 구수한 맛을 낸다. 꿩과 닭이 뭐 그리 다르겠는가 싶지만, 이 집 국물 맛을 보면 그 차이를 느낄 수가 있다. 꿩 육수는 닭국 물처럼 고소함은 적지만 더 시원하다. 또 뚝뚝 끊기는 순메밀면 특유의 느낌도 왠지 제대로 된 것을 먹는다는 기분이 들어 더 좋다.
제주 토박이인 사장 문순희씨(54)는 제주향토음식연구회에 나가며 제주의 전통 별미를 공부-계승하고 있는 이 분야 전문가다. 문 사장에 따르면 꿩메밀칼국수는 제주 양반가에서 즐겨 먹는 여름 별미라고 한다. 특히 음식 궁합을 고려해 만든 보양식으로, 여름철 이열치열 따뜻한 칼국수를 특유의 냉한 성분을 지닌 메밀면을 넣어 끓여내 더위를 이기기로는 그만이라고 한다. 꿩메밀칼국수 6000원, 빙떡 1개 600원. 제주시 연동 251-62.국제 호텔 1층. (064)742-1136
2. 고기국수
제주의 대표적 서민음식이다.
"술먹으난 고기국수 안먹으민 좀이 안 암수다." 술먹고 고기국수 안먹으면 잠이 안온다는 제주 사투리다. 그 만큼 고기국수는 제주 사람들이 즐겨 찾는 음식이다.
제주산 돼지 앞다리를 삶아서 편육을 만들고, 돼지뼈를 몇 시간 동안 푹 고아 낸 진한 육수에 국수를 말아낸다. 얼핏 일본 라멘과 비슷하지만 국물 맛의 깊이가 다르다.
제주시 연동을 찾으면 고기국수를 맛나게 말아 내는 집들이 늘어서 있다. 그중 '갈래길 국수'도 잘 하는 집에 속한다.
제주 토박이 문승욱(56)-경남 밀양 출신의 김상금씨(51) 부부가 알콩달콩 국수집을 운영하고 있다. 처녀 시절 제주도 언니 집에 놀러 온 김씨를 제주 총각 문씨가 공을 들여 섬에 눌러 앉힌 케이스다.
헌데, 결혼을 해 식당 부업을 하고 보니 아내는 그야말로 복덩이였다. 밀양 출신이라 돼지국밥 등을 곧잘 말아내는가 하면 음식 솜씨가 좋았기 때문이다. 밀양 처녀의 내공으로 오늘날 고기국수집도 떡하니 차릴 수 있었던 셈이다.
이 집은 육수가 좀 다르다. 돼지 뼈에 닭발을 추가해 서너 시간을 푹 고은다. 닭 뼈 특유의 고소함이 더해져 국물 맛이 맛깔스러워진다. 국수는 중면을 삶아 찬물에 여러 번 씻어 낸다. 그래야 면발이 쫀득하고, 밀가루 냄새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육수에 국수를 말아 그 위에 돼지 앞다리살 편육과 계란지단, 당근 채, 김가루, 파, 깻가루, 후추가루 등을 뿌려 상에 올린다.
구수한 국물에 부드러운 면발이 어우러져 껄끄러운 여름 입맛에도 부담 없이 넘어간다. 비계가 붙은 앞다리살 편육도 쫄깃 고소하다.
국물 맛이 좋은 데다 맵지 않다보니 일본-미국인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다고 한다. 고기국수 6000원. 제주시 연동 261-39. (064)712-8453
3. 자리강회
제주 사람들의 또 다른 여름 별미 중 하나는 '자리 강회'다. '자리 물회'는 흔히 들었어도 '자리강회'는 생소하다. 물회가 시원한 얼음을 곁들인다면, 강회는 '무침'이다.
'자리'는 제주의 향토 미각을 대표하는 어종이다. 특히 외지인 보다는 자리 특유의 부드럽고 구수한 맛에 매료된 토박이들이 즐겨 찾는 메뉴다. 자리는 '자리돔'이라 불리는 붕어만한 크기의 돔 종류로 칼슘이 풍부하다. 여름철 제주도 근해, 그중 모슬포와 마라도 인근 물살이 센 곳에서 잡아 올린 것을 최고로 친다. 지방, 단백질, 칼슘 등 영양이 풍부한데, 물회, 강회, 자리구이, 자리젓 등 다양한 요리로 해먹는다.
흔히들 여름철 '자리회'라 함은 '물회'를 이르고, 강회는 '무침'이 일반적이다. 물론 남성들은 자리를 날로 썰어 초고추장, 된장 등에 찍어 먹는 방식으로 강회를 즐긴다. 반면 제주 아낙들은 아삭한 야채와 발갛게 버무려낸 무침을 더 즐겨 먹는다. 때문에 자리 맛을 확실히 터득하지 못한 외지인에게는 무침이 더 났다. 입안에서 씹혀지는 뼈 있는 자리살의 식감이며, 씹을수록 구수함이 느껴지는 자리돔의 고소한 육질, 그리고 아삭한 야채와 매콤 고소한 무침소스의 어우러짐이 자꾸 젓가락을 들게 한다. 대다수의 무침이 양념 맛에 의존하는 것과는 달리, 자리 강회는 자리돔의 고소한 육질이 묘한 중독성을 지녔다.
모슬포 포구 일원에는자리돔 요리를 잘 하는 집들이 있는데, 20년 전통의 '돈지식당'도 맛집 축에 속한다. 이 집에서는 모슬포 앞바다, 고산, 과타리 등 인근 해역에서 아침에 잡아 온 자리를 손님상에 내놓는다. 손질한 자리를 먹기 좋게 썰어 오이, 양파, 깻잎, 고추가루, 마늘, 깨, 참기름, 물엿, 식초 등을 넣고 버무려 담아낸다. 식당을 운영하는 오명자(55)-명숙(50) 자매는 "요즘 자리맛 보려는 손님이 많아 '(앉을)자리'가 없다"며 즐거운 비명이다. 매콤한 자리 강회에 시원한 성게미역국(7000원)도 궁합이 곧잘 맞는다. 자리강회-구이 각 2만원, 한치 무침 2만원. 2~3명이서 먹을 수 있는 양이다.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하모리 770. (064)-794-8465
4. 우럭조림
제주의 또 다른 여름 토속 별미는 우럭조림이다. 싱싱한 우럭에 볶은 콩, 마늘지(줄기 장아찌)를 넣고 발갛게 조려 먹는 별식으로, 특히 제주토박이들 사이 여름 보양식으로 통한다. 그도 그럴 것이 신선한 생선살에 식물성 단백질인 메주콩, 그리고 땀을 많이 흘리는 여름철에 짭짤한 마늘지가 염분 보충에 그만이기 때문이다. 특히 우럭은 연중 여름철에 살이 가장 실하게 오르는 데다 육질도 단맛이 돌고 쫄깃해 여름 별미로는 최고다.
우럭조림 맛집으로는 제주시 탑동사거리 산지물식당이 꼽힌다. 이 집은 바다 속 여의 돌구멍에 사는 돌우럭을 쓴다. 돌우럭은 크기는 작지만 해초류를 주로먹고 자라 육질이 부드럽다.
우럭조림 또한 순수 제주산 식재료의 조합이다. 제주산 돌우럭에 마늘과 콩은 메밀과 더불어 제주의 대표 농산물 중 하나다.
우럭조림을 선보이는 주인 이경아씨(61)는 "우럭조림은 조상 대대로 즐겨 온 제주 토속 별미다. 할머니, 어머니, 그리고 나와 우리 딸로 그 요리법이 전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우선 손바닥 크기의 우럭을 손질해 납작한 냄비에 깔고 볶은 메주콩과 마늘지, 갖은 양념을 한 매콤한 소스를 함께 넣는다. 이 때 물은 잘박하게 채운다. 콩과 마늘지는 육질을 부드럽게하고 비린내를 없애주는 작용도 한다.
졸이는 시간은 25분 정도. 국물이 자작해질때가지 은근히 졸이다가 양념이 고루 배면서 시럽처럼 끈적해질 기미가 있으면 그때 상에 올린다. 우럭조림은 특유의 야들야들한 육질도 맛있지만 국물에 밥을 비벼 먹는 맛도 일품이다. 고추가루와 물엿, 미향, 간장, 식용유 등이 들어간 양념이 마늘지, 콩, 우럭 등과 맛깔스런 조합을 이룬다. 특히 메주콩의 쫄깃한 듯 씹히는 식감도 괜찮다. 하지만 마늘지는 좀 짠 느낌이다. 제주시 건입동 1388-1. (064)752-5599
<제주 토박이 간식>
1. 빙떡
예로부터 제주의 대표적 식재료로는 메밀이 꼽혀 왔다. 메밀은 바람과 돌이 많은 척박한 터전에서도 곧잘 자라, 논농사가 힘든 제주에서는 더할 나위 없는 작물이었다. 메밀로 만든 대표적 음식으로는 빙떡을 꼽을 수 있다. 메밀 특유의 담백 부드러움이 촉촉하게 쪄낸 보드라운 듯 고소한 무나물과 어우러져 그야말로 편안한 맛을 담아낸다. 맛을 보면 볼수록 정감이 가는 음식이다. 빙떡은 또 식재료의 궁합을 고려한 대표적 건강식이다. 메밀은 칼로리가 낮고 섬유소가 풍부해 몸에도 좋다. 하지만 메밀에는 찬 성질의 소화를 방해하는 성분이 들어있다. 때문에 소화효소가 많은 무를 넣어 빙떡을 만들었던 것이다.
제주시 연동 꿩메밀칼국수를 곧잘 끓이는 '느티나무'집이 빙떡으로도 유명하다. 이 집은 2008년 이명박 대통령이 제주 방문 시, 간식으로 내놓은 빙떡을 요리한 내력 있는 맛집이다. 당시 수행원은 주문한 200개의 빙떡 중 단 한 개도 남지 않았다고 맛을 칭찬했다는 후문이다.
빙떡의 주재료는 메밀가루와 무다. 우선 빙떡 피는 순메밀가루로 만든다. 메밀가루에 차가운 육수와 소금을 넣어 반죽한다. 육수는 하루 전 다시마, 대파, 무 등을 넣어 만들어 냉장고에 넣어 둔 것을 쓴다. 빙떡 피는 프라이팬에 은근한 불로 익혀 둔다. 곱게 채를 썬 무는 삶지 않고 쪄낸다. 무의 고유한 맛과 영양을 최대한 살리기 위함이다. 쪄낸 무에 실파와 소금, 깨, 참기름 등을 넣어 버무린다. 빙떡 피에 무채를 얹고 돌돌 말아 낸다. 빙떡 1개 600원. (064)742-1136.
2.꽁치김밥
'김밥 왕국' 대한민국에 다양한 김밥이 등장했지만 제주에서 만난 것은 좀 파격적이다. '꽁치 김밥'. 말 그대로 김밥의 속으로 밥과 함께 꽁치를 통으로 넣어 둘둘 말아 낸 것이다. 원래 서귀포의 한 회집(우정회집)에서 밑반찬으로 내놓던 것이 인기가 좋자 아예 회집 딸이 주변 포장마차 촌에서 정식으로 꽁치김밥을 팔고 있다. 제주도 서귀포시 서귀동 서귀포 올레포장마차촌을 찾으면 별미를 맛볼 수 있다. 꽁치의 내장과 가시를 발려내고 구워서 김밥의 속으로 쓰는데, 짭잘 담백한 게 먹을 만하다. 특히 시장할 때 간식으로는 괜찮다. 한 줄에 2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