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제 길을 잃다] 가장 믿을 자산은 金!… 美·유럽선 금괴 자동판매기까지 등장

"믿을 건 현금과 금밖에 없다."

글로벌 증시에 빨간 신호등이 켜지자, 전 세계 자금이 일제히 '안전 차선'을 찾아 방향을 바꾸고 있다. 주식을 팔아 현금을 확보하고, 상대적으로 믿을 만한 금(金)과 채권을 사들이는 식이다.

◆안전자산 1=금

미국 달러화를 대체할 최고 안전자산으로 꼽히는 금은 연일 사상 최고가를 갈아치우고 있다. 미국 신용위기로 전 세계 증시가 폭락한 뒤인 9일 뉴욕상업거래소에서 금은 전날보다 2.5% 오른 온스당 1752.8달러에 거래됐다. 금값은 지난달 18일 처음으로 1600달러를 넘어선 데 이어 한 달도 안 돼 1700달러를 돌파했다.

세계적인 투자자 워런 버핏은 지난 5월 금값이 1550달러 선이었을 때 "금은 이미 많이 올랐다"며 금 투자를 경계했지만, 버핏을 조롱하듯 금값은 그 후에도 더 뛰었다. 최근 중동과 유럽, 미국에선 '금괴 자동판매기'가 등장하면서 금 보급 속도가 더 빨라지고 있다.

◆안전자산 2=채권

주식을 떠난 돈은 채권으로도 이동하고 있다. 특히 미국 신용등급 강등에도 불구하고 역설적이게도 미국 채권이 강세를 보이고 있다.

8일(현지시각) 미국 국채 10년 금리는 지난 1일 대비 0.36%포인트 하락한 2.38%로 마감했다. 유럽이 막대한 재정적자로 디폴트(채무불이행) 위기에 빠지면서, 그나마 믿을 건 미국 국채라는 심리가 작용했기 때문이다. 오승훈 대신증권 연구위원은 "미국 신용등급 강등으로 이론적으로는 미 국채 가치가 하락해야겠지만 대체할 만한 채권이 많지 않다"면서 "미 국채 가치마저 하락하면 더 큰 위기가 올 수 있는데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라고 말했다. 유로존 내에서는 경제 규모가 가장 크고 신용등급 AAA를 유지하고 있는 독일 국채가 인기를 끌고 있다. 8일(현지시각) 독일 10년물 국채금리는 2.29%로 연중 최저치(채권값 상승)를 기록했다. 우리나라에서도 국채 선호 현상이 강해지면서 국고채 3년 금리는 1일 3.9%에서 9일 3.57%로 하락했다.

◆안전자산 3=엔화·스위스프랑화

미 달러가 신용에 상처를 입게 되자 전 세계 통화 가치도 재편되고 있다. 유로존 전체가 남유럽 재정적자 부담을 떠안게 되면서 유로화는 이미 달러를 대체하지 못하고 있다.

대신 일본 엔화와 스위스프랑 등 부도 위험이 적은 나라의 통화가 인기를 끌고 있다. 9일 엔화는 달러당 77엔대로 거래돼 80엔 선을 회복시키려는 일본 정부의 외환시장 개입을 무색하게 만들고 있다. 일본은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이 세계 최고이고 대지진과 경기 침체로 고통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채권을 일본 자국 기관이나 일본 국민이 보유하고 있어 부도 위험이 낮은 나라로 인식된다. 또 유로존에서 벗어나 있고 재정이 튼튼한 스위스프랑화의 가치도 날로 높아지고 있다.

◆원유와 원자재 가격은 급락

반면 원자재 가격은 크게 하락하고 있다. 세계 경기 침체가 장기화될 경우, 정부의 사회기반시설 투자나 기업의 설비 투자가 감소하면서 원자재 수요가 감소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9일 서부텍사스유(WTI)는 뉴욕상업거래소에서 전날보다 1달러 하락한 배럴당 80.32달러로 거래됐다. 원유값은 중동 불안 사태로 공급이 줄면서 지난 4월 말 113달러까지 급등했었다.구리와 아연 등 주요 상품가격도 전날보다 3~4% 하락했고, 옥수수·밀 등 농산물도 전날보다 2~3% 하락해 거래됐다. 하지만 이상재 현대증권 투자전략부장은 엔화나 미 국채 등 어느 것 하나 100% 안전하다고 볼 수 없어 '못난이 경쟁'을 하는 형국"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