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분석] 예보기금 막 돌려쓰면…결국은 일반예금자 피해다

국회 저축은행 국정조사특별위원회가 예금보험기금을 털어 영업정지 저축은행의 예금을 6000만원까지 전액 보상하고 2억~3억원까지 차등 보상하는 특별법 제정을 추진키로 했다.

이는 시중은행과 보험사, 증권사를 이용하는 일반 금융소비자들의 예보기금을 빼내 쓰는 셈이어서 저축은행 부실과 투자 책임을 일반 금융소비자들에게 전가(轉嫁)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예보기금 저축은행 관련계정이 8조원에 가까운 적자를 기록하고 있어 재원 조달이 어렵다는 점도 문제다.

또 현행 법정 예금자보호 한도인 5000만원을 넘어 법위반 논란이 있는 데다 예전 저축은행 투자 피해자, 나아가 다른 금융투자상품 투자 피해자와의 형평성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

◆ “부실 떠넘기기 안돼”…예보기금 저축銀 적자 ‘7조7000억’

예금보험기금은 금융회사가 경영 부실 등으로 예금을 돌려줄 수 없게 되면 예금자의 손실을 보전해 주기 위해 별도로 마련된 기금이다. 이 기금은 금융회사들이 예금 중 일정 금액을 납부해 적립되지만 사실상 예금자들의 돈을 재원으로 조성된 것이다.

권영준 경희대 교수는 10일 “일반 금융소비자, 나아가 국민에게 저축은행 부실 투자 책임을 전가하는 셈”이라며 “결코 예금자와 국민의 동의를 얻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예보기금 중 저축은행 관련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는 점도 문제다.

예금보험공사(이하 예보)의 국회 보고자료에 따르면 지난 6월 말 현재 저축은행 관련계정은 7조7000억원이나 적자 상태여서 재원 조달이 어려울 전망이다.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저축은행 관련계정 적자는 3조원 초반대인 알려졌다. 하지만 올해 초 부산저축은행 등 8개 저축은행의 영업정지에 따라 예금보험금 지급이 급증하면서 적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저축은행 관련계정 적자가 6개월새 2배로 늘면서 전체 예보기금 적립액도 지난해 말 5조6000억원 수준에서 6월 말 1조4882억원으로 4조원 가까이 증발했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는 “특별법이 시행된다면 예보기금을 획기적으로 늘려야 한다”며 “저축은행 예보료율 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금융회사 예보료율을 10배이상 올려야 할지도 모른다”고 밝혔다. 윤 교수는 “이 경우 우리 일반 예금자들이 큰 이자 손실을 감수해야 할 것”이라며 “정확한 재원 예측과 공청회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정치권 피해보상案 금융시스템 훼손·형평성 문제

정치권의 저축은행 피해보상 특별법안은 지난 2003년 예금보험기금 설립 이후 지켜져 온 예금자보호 시스템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는 우려도 낳고 있다.

예보 관계자는 “법정 예금보험 한도 이상으로 보상받을 수 있다는 인식이 생기면 높은 금리를 주는 위험한 금융회사에 예금하는 게 장려돼 도덕적 해이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 은행 관계자는 “이제까지 잘 지켜져온 법을 무력화시키는 특별법이 만들어지면 법위반 논란이 생길 수 있고 금융신뢰 역시 떨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정치권의 특별법 추진에 부정적인 입장이며 경우에 따라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까지 건의할 정도로 반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별법안의 문제점은 또 있다. 이 법안에서 특별히 보전해주기로 한 영업정지 저축은행의 범위에서 빠지는 저축은행 피해자들과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여야가 합의한 이번 특별법안은 지난 2008년 9월 이후 지금까지 영업정지된 12개 저축은행 피해자 중에서 법인을 제외한 개인들만 대상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2008년 이전에 영업정지된 11개 저축은행 피해자들은 5000만원 예금보장 한도를 넘는 피해액은 고스란히 떠안은 바 있다. 만약 특별법이 시행되면 이전 영업정지 저축은행 피해자들 마저 소송에 나설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펀드 등 다른 금융투자상품 피해자와의 형평성 문제도 거론된다. 권영준 교수는 “다른 금융상품 투자피해가 발생할 때 마다 특별법을 만들어 사후적으로 피해를 보상해줄 것인가”라며 “정치권이 표를 의식해 무리한 입법을 추진하고 있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