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국민은행 압구정역지점장 시절 지점 이전식에서 테이프 커팅할 때 모습. 오른쪽이 유선재씨.
37년간 행원에서 지점장까지 앞만 보며 달려왔다 50대 중반 임금피크 맞으며 남은 열정 불사를 새 일 찾아 은행 창구에서 배운 노하우로 평생 배필 찾는 이들 돕는다
'저분 뒤통수를 보니 상담이 잘 안 된 모양이네. 좀 더 잘 해드렸어야 했는데…'.
나는 올 초까지 37년간 은행원으로 살았다. 오랜 세월 은행 창구를 지키며 생긴 습관 하나가 있다. 상담을 마치고 돌아가는 고객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것이다. 신기하게 뒤통수만 봐도 감이 왔다. 내 서비스에 만족하는지 그렇지 않은지. 뭔가 불만스러운 뒷모습을 보면 퇴근길 집으로 가는 지하철 안에서도 찜찜한 마음이 사그라지지 않았다. '더 친절히 설명드릴 걸 그랬나?'
올 초 명예퇴직해서 은행 문을 나섰지만 내 마음은 여전히 고객을 향한다. 이제 그 고객은 혼기를 맞은 젊은 남녀들이다. 내 새로운 직업은 결혼정보회사의 커플 매니저이다. 얼마 전까지 나의 온 관심사는 고객이 금전적으로 행복할 수 있게 재테크를 도와주는 것이었지만, 지금은 어떻게 하면 고객이 배필을 만나 행복하게 가정을 꾸릴 수 있게 도와줄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내가 이제껏 팔았던 그 어떤 금융 상품과도 비교되지 않는 인생의 가장 중요한 결정을 조언하는 것이다.
커플 매니저가 된 유씨가 결혼 상담을 위해 찾아온 고객과 이야기하고 있다.
내 '깜짝 변신'에 적잖은 사람이 놀란다. 갓 스무 살에 은행에 들어와 50대 후반까지 한우물을 판 나더러 친구들은 '뼛속까지 은행이 물들었을 것'이라고 농반진반 말하곤 했다. 나 역시 내가 은행을 벗어나 이렇게 제2의 인생을 살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1974년 국민은행의 일반 행원으로 입사해 올 초 지점장으로 관둘 때까지 내 머릿속은 온통 은행과 고객밖에 없었다. 여자로서 당해야 했던 불이익도 감내해야 했다. 처음 입사했을 때 회사에서 하얀 종이를 내밀었다. '결혼하면 관둔다'는 각서였다. 당시 워낙 일하는 여자가 없어서 생긴 관행이라고는 하지만 막 발을 내딛는 사회 초년병에겐 가혹한 좌절이었다. 결국 이 각서 관행은 몇 년 뒤 없어졌지만 이후로도 눈에 보이지 않는 차별은 계속됐다. 내가 몸담고 있던 은행은 그나마 사정이 나았다고 하지만 남자들과 경쟁에서 밀려나 승진이 한참 밀렸고 그때마다 아무리 심지 굳은 나였지만 흔들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도 포기를 모르는 성격 덕에 위기가 있을 때마다 버텨낼 수 있었다. 열심히 해서 좋은 성과를 올리는 것만이 살아남는 길이었다. 한때 동료들 사이에서 내 별명은 '업신'이었다. '업무 평가의 신'이라는 뜻이다. 지점장 생활 7년 동안 매년 가장 높은 고과인 올 S등급을 받아서 붙은 명예로운 훈장이다. 다시 돌아간다 해도 더 이상 잘할 수 없을 만큼 후회 없이 모든 걸 바쳐 일했다. 함께 들어온 동기 여직원 69명 중 가장 마지막까지 버텨냈으니, 나 스스로도 장하단 생각이 든다.
앞만 보며 달려왔지만 쉰 중반에 이르자 슬슬 떠나야 할 때를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만 55세가 돼 임금피크 대상이 되자 심리적 압박이 더 심해졌다. 무엇보다 아직 일에 대한 열정과 무한한 에너지가 남아 있다는 사실이 새로운 일을 하게끔 자꾸 나를 충동질했다. 고민하던 어느 날 우연히 신문을 보다가 기사 하나가 눈에 띄었다. '나이가 들수록 빛나는 전문직, 커플 매니저'라는 제목의 기사였다. 내 고민을 해결해줄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기대감에 한 자도 놓치지 않고 꼼꼼히 읽어내려갔다. 고객의 필요 파악이라는 가장 중요한 요건은 내가 은행에서 갈고 닦아온, 내가 잘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상대를 설득할 때 필요한 정확한 어휘 구사는 직장 생활을 하며 야간으로 대학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하고 중등 국어교사 자격증까지 따놓은 터라 자신이 있었다. 딱 나를 위한 '맞춤형 직업'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용히 자기소개서를 준비했다. 내 삶을 돌아보는 계기도 됐다. 그리고 지난해 사내에 명예퇴직 공고가 났을 때 이 소개서를 들고 결혼정보회사를 찾았다. 그중 내 경력을 존중해주고 이사라는 타이틀까지 준 '닥스클럽'을 새 직장으로 택해 올 1월부터 일하고 있다.
나는 이 새로운 일이 내 인생의 '덤'이라고 생각한다. 퇴직금도 있어 금전적으로 굳이 일할 필요는 없었다. 그럼에도 내가 커플 매니저에 도전하게 된 이유 중 하나는 우리의 결혼 문화를 제대로 가꾸고 싶어서이다. 부모들과 상담을 하다 보면 가끔 한숨이 나온다. 학원에 보내 아이를 교육하는 데 길든 일부 '강남 엄마' 중엔 결혼을 무슨 좋은 학원에 보내는 것처럼 여기는 사람도 있다. 스펙을 너무 따지다 보니 상대의 인성 보는 건 뒷전일 때도 있다. 나는 결혼을 위한 결혼을 하려는 이들에겐 '정말 결혼을 원하는 건지'부터 묻는다. 20~30대에 만약 이 일을 했다면 무조건 성과를 높이려 발버둥쳤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 나는 인생의 멘토라는 심정으로 고객을 대하려 한다. 1막의 연륜과 전문성이 2막의 진정성을 높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