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남편 신장 나눈 우리, 이런 인연도 없죠"

"새로 태어난 기분이에요." "하늘을 날 듯 기뻐 잠도 안 와요."

말기 신부전증으로 고생하던 두 여성이 상대 남편의 신장을 교차 이식받는 수술로 새 삶을 누리게 됐다. 부산 중구 대청동 메리놀병원에 입원한 김옥기(50·울산시 울주군), 박순이(46·울산시 북구)씨다. 우연히 둘 다 울산 사람이다.

10일 병원 쉼터에서 만난 이들의 표정과 목소리는 밝고 명랑한 여고생 같았다. 그러나 한 달 전만 해도 긴 시간 병마와 싸우느라 지칠 대로 지친 상태였다.

박순이씨는 지난 3월 울산의 한 병원에서 유방 검사를 받았다. '말기 신부전'이라는 진단을 받고 지난달 11일 부산 메리놀병원으로 왔다. 남편의 신장을 이식받으려고 장기 반응 검사를 했다. 하지만 이식이 불가능하다는 판정을 받았다. 박씨는 "뇌사자 장기를 기증받으려면 4~5년은 기다려야 하고, 그나마 이뤄진다는 보장도 없지 않으냐"며 "평생 혈액을 투석하며 살아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절망감에 힘들었다"고 했다.

김옥기씨는 2004년부터 말기 신부전증으로 복막 투석을 받아왔다. 지난달 6일 남편 신장을 이식받으려고 입원했다. 하지만 장기의 조직형 일치율이 0%로 불가능해 낙담에 빠진 상태였다. 그러던 차에 병원 측이 박씨는 김씨 남편에게서, 김씨는 박씨 남편에게서 신장을 이식받는 부부 간 교차 이식 수술을 제안했다.

두 부부는 처음엔 망설였다. 그러나 신부전증의 고통 및 동병상련의 느낌과 함께 "자기 아내를 위해 신장을 떼어내겠다고 나선 남편이라면 분명히 좋은 사람일 것"이라는 믿음도 갖게 돼 서로 제안을 받아들였다. 검사 결과는 조직형 일치율 33%. 모두 이식 가능했다. 김씨는 지난달 19일, 박씨는 이틀 뒤에 이식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수술 전 검사 때만 해도 서로 아무래도 서먹했죠. 하지만 서로의 남편 신장을 이식받고 나니 이젠 친자매처럼 가까워졌어요." 김씨와 박씨는 "같은 도시에 살고, 비슷한 시기에 병원에서 만났고, 그리고 서로의 남편 장기를 나눠 갖게 됐다"며 "우리 둘, 아니 네 사람 모두가 하늘이 맺어준 인연인 것 같다"고 했다. 이들은 11일 퇴원한다.

수술을 집도한 공진민(55) 내과 전문의는 "신장 이식 수술을 582번이나 했지만 이식이 불가능한 환자들을 위해 가족 간 교차 이식을 한 건 처음"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