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회 LG배 세계기왕전] 眞面目

〈제5보〉(64~78)=전성 시절 이창호에 대한 바둑계의 신뢰는 절대적이었다. 그가 어쩌다 한 판 패할 경우 팬들은 "져 주었다"고들 했다. 그랬던 이창호가 올해 초 국수마저 빼앗겨 22년 만에 무관(無冠)이 되면서 통산 138회 우승 기록도 무색해졌다. 아무리 바둑계가 젊어져도 이창호만은 버텨주리라던 기대도 빗나갔다. 36세가 바둑에선 그토록 많은 나이일까. 이창호의 시대는 정말 끝난 것일까. 아직 결론은 유보(留保)다.

64는 30분이 소요된 이 바둑 최장고수. 참고1도 1이면 2, 3의 교환만으로도 좌변 봉쇄가 불가능해진다. 64, 66이 놓이자 검토 기사들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아무리 봐도 그토록 장고할 장면이 아니라는 것. 67로 좁고 높게 벌린 것은 68을 유도, 선수(先手)를 뽑겠다는 뜻이다.

69~75는 강력한 수법. 이런 기질이 이세돌과 흡사하다. 문제는 이처럼 거친 수단이 이창호에게도 통하느냐의 여부다. 69로는 참고2도의 처리가 온건했으며 이것으로 팽팽한 형세였다. 76이 강수이자 빛나는 반격. 77로 패를 때릴 때 또 손을 뺀 78이 이창호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흑은 과연 '가'로 본격 패를 감행할 수 있을까. (77…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