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투사 후손들, 한국인 국적 찾다

"우리는 독립 유공자의 후손으로 자랑스러운 조국 대한민국의 번영과 발전에 기여할 것을 선서합니다."

이근수 선생의 손자 이찬희(61)씨가 대표로 선서하자 곳곳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이씨는 "선서를 하는 순간 마치 꿈을 꾸는 것 같았다"고 했다.

11일 오후 경기 과천시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 '대한민국 국민이 되신 것을 축하합니다' 하는 현수막과 태극기 앞에서, 일제에 항거해 중국에서 싸우다 순국한 독립 유공자의 후손 13명이 대한민국 국적을 얻었다.

이씨는 1994년 혈혈단신으로 할아버지 고향 한국을 찾았다. 조부 이근수 선생은 중국 서간도 한인학교에서 독립투사를 키웠고 '모험청년단'을 조직해 일본의 주요 시설을 폭파하려다 체포돼 1924년 순국했다. 하지만 손자 이씨는 할아버지 고국에서 '불법 체류자' 신세였다. 지금도 전국 공사장을 전전하며 막일을 하고 산다.

한국광복군 선우완 선생의 막내 아들 광협(44)씨는 중국에서 성공했다. 선양(瀋陽)에서 종업원 100명의 화장품 회사를 운영한다. 중국 곳곳에 대리점을 내고 'F2F'라는 브랜드도 만들었다.

그는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나는 독립운동하느라 중국에서 힘들게 살았지만 너희는 꼭 고국에 가서 살라'고 하신 유언을 따라 한국 국적을 신청하게 됐다"고 했다. 광협씨는 국적을 얻었으니 이제 한국·중국을 오가며 사업하고 싶다고 했다. 랴오닝(遼寧)성에 있는 아버지 묘도 대전 현충원으로 옮길 계획이다. 그는 "오늘 아버지가 지켜보시는 것 같아 눈물이 났다"며 "어렵게 사는 독립 유공자의 후손들을 돕고 싶다"고 했다.

칠순의 천숙자(76)씨는 앞으로가 걱정이라고 했다. 중국 헤이룽장(黑龍江)성에서 나고 자라 한국말을 전혀 모르는 작은아들(38)의 일자리 때문이다. 천씨는 이번에 그 아들과 입국했다. 큰아들(53)이 3년 전 먼저 서울에 와 살고 있지만 몸이 아파 며느리가 공사장 식당에서 일해 근근이 산다. 그래도 천씨는 "돈은 안 받아도 돼요. 고국을 찾았다는 게 더 가치가 있지" 했다. 옆에 있던 아들이 중국어로 얘기했다. "우린 열사의 후손이잖아요. 얼른 일자리 찾고 우리말도 배울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