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경궁을 깨우는 거문고·대금 소리

꽃무늬를 수놓은 화문석 위에 한 여인이 날아든다. 꾀꼬리를 상징하는 노란색 앵삼(鶯衫)과 허리에 두른 붉은 띠가 손짓마다 떨린다. 정조의 손자인 효명세자(1809~1830)는 어머니인 순원숙황후의 40세 생신을 축하하기 위해 1828년 궁중무용인 '춘앵전(春鶯?)'을 만들었다. 봄날 버드나무 가지 위에 앉아 노래하는 작고 귀여운 꾀꼬리를 표현했다.

토요일인 지난 13일 오전 7시 30분 창경궁 통명전(通明殿). 문을 모두 걷어올려 앞뒤로 탁 트인 마루는 꾀꼬리 한 마리로 정점에 달했다. 국립국악원이 창경궁에서 개최하는 궁궐 음악회인 '창경궁의 아침'에 이른 아침부터 50명의 관객이 찾아온 것. 이들은 궁중무용에 넋을 잃었고, 거문고와 가야금·피리·대금·단소·장구 등이 어우러진 반주음악은 전각 주변에 은은히 퍼졌다. 이날 공연은 국립국악원 정악단과 무용단 소속 단원 20여명이 꾸미고, 송혜진 숙명여대 전통문화예술대학원 교수(국악이론)가 해설을 맡았다.

"조선시대 임금은 신하들과 함께 음악을 즐기고 다과를 들며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通明殿'이란 편액은 순조임금의 글씨입니다."

대청마루 무대에서는 '춘앵전' 외에도 옛 선비들이 풍류를 즐길 때 부르고 감상하던 노래인 '가곡(歌曲)'과 대나무의 청청한 그늘을 대금의 맑은 음색으로 형상화한 '청성자진한잎', 거문고·가야금·해금·세피리·대금·단소·양금·장구가 총출동해 실내악 편성으로 연주하는 합주곡인 '천년만세'가 골고루 펼쳐졌다. 국립국악원 관계자는 "궁궐 음악회는 자주 있었지만 통명전에서 열린 건 처음"이라고 설명했다. 공연이 끝난 뒤 유지훈(35·서울 시흥동)씨는 "낮게 깔린 안개 사이로 무리지어 핀 꽃에서 고운 향이 풍겨와 딴세상에 온 듯 신기한 기분이 들었다"고 했고, 김선희(54·경기도 성남 태평동)씨는 "눈앞에서 연주자들의 숨소리와 눈빛을 생생하게 볼 수 있어 그전까지 낯설었던 국악이 신선하게 다가왔다"고 했다.

국립국악원은 오는 20일부터 다음 달 3일까지 세 번 더 토요일 오전 7시 30분에 창경궁에서 이 음악회를 선보인다. 장소는 창경궁의 정전인 명정전(明政殿)의 뒤뜰. 신하들이 임금에게 새해 인사를 드리거나 국가의 큰 행사를 치르던 곳이다. 연주 곡목은 '현악영산회상'. 거문고·가야금·대금·세피리·해금·단소·양금·장구가 하나씩 편성되는 작은 규모의 합주곡. 여러 영산회상 중에서도 조촐하고 단정한 풍류의 멋이 한껏 드러난다.

명정전 뒤뜰 공연은 무료로 국립국악원 홈페이지(www.gugak.go.kr)를 통해 매회 500명 선착순 신청을 받는다. 야외 공연이어서 비가 오면 취소된다. 공연이 끝나면 정식 개방 시각인 9시 이전에 창경궁 안을 전문해설사와 함께 거닐며 궁에 얽힌 역사적 이야기와 궁궐 소개를 들을 수 있다.

▶창경궁의 아침=20일·27일·9월3일 오전 7시30분 창경궁 명정전 뒤 회랑, (02)580-3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