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작가 23인이 그린 우리 현대미술의 역사

산뜻한 오렌지색 빛이 165㎡(50평)가량의 방 안을 가득 채운다. 창문 하나 없는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본관 2층 전시실이 빛의 향연이 펼쳐지는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벽에 설치된 박기원(47)의 작품 '낙하2'(2011) 덕분이다. 국립현대미술관 2010년 '올해의 작가'인 박기원은 벽 두 면에 걸쳐 너비 18.9m, 높이 6.3m의 오렌지색 비닐 커튼을 걸었다. 커튼 뒤 벽에 200개의 형광등을 설치해 창으로부터 빛이 쏟아져 들어 오는 것 같은 효과를 줬다. 이 방은 국립현대미술관이 10월 30일까지 개최하는 '올해의 작가 23인의 이야기 1995~2010'전 아카이브룸(자료실)으로 마련됐다.

1995년부터 2010년까지 열었던 '올해의 작가'전은 국립현대미술관이 미술관 이름을 걸고 마련해온 대표적인 자체 기획전이었다. 박수진 학예연구사는 "'올해의 작가' 제도 도입 전에는 외부의 압력에 의한 '낙하산 개인전'도 더러 있었다고 한다. '올해의 작가'는 '미술관 내부에서 치열한 작가의식을 가진 작가들을 선정해 보여주자'는 뜻으로 마련된 제도"라고 설명했다.

이번 전시에 나온 작품은 모두 150여 점, 선정 기간은 16년이지만 참여 작가가 23명인 이유는 2000년 노상균·이영배, 2004년 김익영·윤광조 등 두 명씩을 선정했고, 2001~2005년에는 '원로작가 부문'에서도 한 명씩(권옥연, 전혁림, 한묵, 정점식, 서세옥)을 뽑았기 때문이다.

1995년 제1회 '올해의 작가'로 전수천(64)이 선정됐을 때, 국내 반응은 "대체 누구야?"였다. 일본에서 대학을 나오고 미국 유학을 다녀온 후 일본에서 주로 활동해 왔던 전수천은 당시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였다. 선정 기념 전시회에서 전수천이 내놓았던 '토우:타임터널'은 토우(土偶)와 네온을 이용해 동·서양의 결합, 전통과 현대의 접목을 시도한 설치작품. 이 작품은 미술계의 큰 관심을 불러모았고, 전수천은 그해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대표로 참여해 특별상을 받는다. 이번 전시에서 전수천은 '토우:타임터널'을 재설치했다.

이후에도 '올해의 작가' 선정은 미술계에 화제를 뿌렸다. 2002년 건축가 승효상(59)이 선정됐을 때는 보수적인 국립 기관이 '건축'을 '미술'의 영역에 공식 포함시켰다는 이유로 주목받았고, 2005년 민중미술가 이종구(57)가 선정됐을 때는 "국립 미술관에 민중미술이 입성했다"며 떠들썩했다. 승효상의 건축물 모형들, 이종구가 쌀 포장지와 아크릴 물감, 신문지 등을 이용해 만든 '국토-오지리에서'(1988)도 전시에서 만날 수 있다.

이번에 마련된 '올해의 작가 23인의 이야기 1995~2010'전은 제도 재정비를 위한 '중간결산전'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연말까지 '올해의 작가' 제도를 개편해 내년부터는 선정 과정에 외부 전문가를 참가시키고 방송사 후원을 받아 진행하기로 했다. (02)2188-6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