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은 기자의 '공연장에서'] 조수미는 공연 3시간 전 OO을(를) 먹는다

운동선수들은 쉬는 시간에 바나나를 즐겨 먹는다. 100g당 칼로리(93㎉)가 밥 3분의 1공기에 해당할 만큼 높고, 마그네슘 같은 무기질이 많기 때문이다. 휴대하기 쉽고, 껍질만 벗겨 먹을 수 있다는 것도 장점.

음악가들도 바나나를 즐겨 먹는다. 보통 공연 3시간 전에 식사를 하는 음악가들에겐 바나나가 허기를 달래고 근력을 키워주기에 딱 좋기 때문이다. "먹은 뒤 립스틱을 새로 발라야 하거나 양치질을 할 필요가 없다" "상대 가수와 얼굴을 맞대고 노래해야 하는데 입냄새가 나지 않아 좋다"는 것도 음악가들이 바나나를 즐기는 이유다.

하지만 사람에 따라 기호도 다른 법. 공연 전후 음악가들은 무엇을 먹을까.

◆과일이 최고

베이스 함석헌은 100% 사과만 담긴 사과주스 3병을 마신다. 그것도 공연 세 시간 전 미리 마셔둔다. 그래야 두 시간 내내 노래해도 갈증이 안 난다. 루치아노 파바로티 역시 '대기실 사과 3알'을 반드시 요구했다고.

바이올리니스트 안네 소피 무터는 건포도 무설탕 시리얼을 먹는다. 최근 내한한 지휘자 다니엘 바렌보임은 금방 짠 오렌지 주스만 찾는 바람에 기획사 직원들이 고생했다는 후문이다.

◆홍삼 vs. 설렁탕

소프라노 조수미는 씹어 먹는 홍삼을 꼭 챙긴다. "먹고 나면 한순간에 에너지를 극대화할 수 있는 '인스턴트 파워(instant power)'가 나와요. 우리는 에너지를 무대 위에서 한꺼번에 터뜨려야 하잖아요?" 외국인 연주자들에게도 선물로 나눠주다 보니 요즘엔 그녀만 보면 '홍삼 있어?'라고 묻는 이가 꽤 된다고 한다. 한국에 오면 반드시 홍삼을 챙기고, 한국에 사는 모친이 로마의 집으로 부쳐 줄 때도 있다.

피아니스트 김대진은 설렁탕만 먹는다. "뜨끈한 국물을 먹어줘야 배가 차서 피아노 앞에도 자신있게 앉을 수 있다"고. 김대진은 연주 때만 입는 내복, 호주머니엔 1000원짜리 지폐 넣기, 연주 30분 전부턴 화장실 안 가기 등 여러 징크스가 있었지만 지금은 설렁탕 먹는 것만 지킨다. 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은 항상 김밥과 만두를 먹고, 피아니스트 임동혁은 돈가스를 즐겨 먹는다.

◆지휘자는 맥주를 좋아해

지휘자 블라디미르 아슈케나지는 두 시간 연주가 끝나면 무대 뒤로 와서 꼭 맥주를 찾는다. 지휘자 파보 예르비는 공연 후 맥주 한 잔으로 재충전한 뒤 앙코르 연주에 들어간다. 기획사 직원들은 2부 공연이 시작되면 예술의전당 근처 수퍼로 달려가서 찬 맥주를 사오는 걸 '보람'으로 여기기도 한다.

바이올리니스트 나이젤 케네디와 소프라노 캐슬린 배틀은 대기실 음식 명단까지 미리 적어보내는 걸로 유명하다. 특히 케네디는 2007년 내한 당시 "공연 당일, 최고급 일식 레스토랑에서 직접 배달한 생선회 한 접시를 리허설 룸에 마련할 것. 최소 25점 이상 준비하되 참치 4점, 장어 4점, 연어 4점, 참새우 4점, 주방장이 선택한 5점 등을 마련할 것. 젓가락, 간장, 고추냉이 등을 추가할 것"을 요구해 화제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