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백일 장군님은 나 '김치 5(five)'가 지킬겁니다"

"피란민 10만명과 그들의 후손 등 100만명을 살린 6·25전쟁 영웅에게 그게 할 짓입니까?"

경남 거제시 장승포동 '장승포 가축병원' 이경필(61) 원장은 지난달 20일 지역 시민단체 회원 10여명이 거제포로수용소 유적공원 내 김백일 장군 동상에 검은 비닐을 씌우고 쇠사슬로 감은 뒤 자물쇠를 채웠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고 했다. 이씨는 "그건 명백히 잘못된 행동"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날 이후 이씨는 바빠졌다. 그는 '국방부 군사편찬회'의 '태극무공훈장에 빛나는 6·25전쟁 영웅' 자료 등 김백일 장군 관련 자료를 구해 '김 장군 바로 알리기'에 나섰다. 흥남철수작전기념사업회 거제시지회 부회장인 그는 지난 7월 29일 거제포로수용소 유적공원 앞에서 열린 김백일 동상 철거 규탄 대회에 달려가 힘을 보탰고, 시민단체 관계자들에게 "김백일 장군을 제대로 살펴보자"며 세미나 개최를 제의해 놓았다. 이씨는 "세미나에 전문가 등이 모여 김백일 장군에 대해 정확히 규명해야 한다"며 "일제 강점기 잠시 만주군에서 복무한 과(過)를 수십 수백 배 덮고도 남을 공(功)이 있다는 걸 젊은 세대에게 알려야 한다"고 했다.

"김 장군은 흥남철수 작전 당시 미군을 설득, 함경도 피란민 10만명을 무사히 철수시켰을 뿐 아니라 6·25전쟁에서 조국을 지켜낸 위대한 군인 중 한 사람입니다. 흥남철수 3개월 뒤인 1951년 3월 군 지휘관 회의 후 부대에 복귀하려고 비행기를 타고 대관령 상공을 지나다 악천후로 추락하면서 34세 나이로 숨져 부귀영화를 누린 적도 없습니다. 개인적으론 제 생명의 은인이기도 하지요."

이씨는 태어났을 당시 이름 대신 '김치 5(kimchi five)'로 불렸던 인물이다.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12월 25일생(生)이다.

중공군 개입으로 전세가 불리해진 1950년 12월 메레디스 빅토리호(7600t)를 비롯한 미국 군함과 화물선, 상선 14척이 피란민 10만명과 미군 10만명을 함경도 흥남에서 거제 장승포항 등지로 실어나른 흥남철수 작전 도중 태어났다.

이씨 부모가 메레디스 빅토리호를 탈 때 이씨는 어머니 배 속에 있었다. 장승포항에 도착하기까지 사흘간 이 배에서는 아이 5명이 태어났다. 미군들은 태어난 순서대로 '김치 1 (kimchi one)' '김치 2(kimchi two)' 식으로 이름을 붙였고, 맨 마지막에 태어난 이씨는 '김치 5'가 됐다. 이씨 부모는 장승포에 정착, 사진관 등을 하며 3남 1녀를 훌륭히 키워냈다.

"보름 정도 지나 돌아가겠다"던 고향엔 끝내 돌아가지 못했다. 거제에서 초·중·고교를 졸업한 이씨는 진주 경상대 수의과대학을 졸업, ROTC 전역 후인 1975년부터 수의사로 일하고 있다. 이씨는 자기가 '김치 5'로 불린 것을 2005년 알게 됐다.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던 한 방송사가 미국 측 자료를 찾아 확인하는 과정에서 밝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