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허, 나도 한땐 리버럴(자유주의적 성향)하다는 말 들었어요"

양승태(63) 대법원장 후보자는 지난 14일 미국 서부 요세미티 국립공원에 있는 한 호숫가에서 낚시를 하고 있었다. 지난 2월 퇴임할 때 "법원으로 다시 돌아오지 않겠다"며 등산 장비를 챙겨 미국으로 떠나 시에라네바다 산맥에서 360㎞를 트레킹하던 중이었다.

30년 만에 낚싯대를 잡은 그는 그때 팔뚝만한 고기를 건져 올렸다가 실수로 놓쳐버렸다. 고등학교 때부터 절친했던 친구 강모씨가 옆에서 말했다. "야, 그렇게 큰 고기를 놓아줬으니 좋은 소식이 있겠어."

얼마 뒤 양 후보자에겐 "대법원장이 돼 달라"는 청와대의 전화가 걸려왔다. 청와대의 인사 검증에 동의하지 않아 후보군에서 빠졌다가 이명박 대통령의 설득에 지난 17일 급거 귀국한 그의 '인사(人事) 드라마'엔 그런 전조(前兆)가 있었다.

그는 고교 시절엔 팝송광이었다. 엘비스 프레슬리와 폴 앵카의 팝송을 특히 좋아했다. 그는 팝송 1000곡 정도의 가사를 외워 흥얼거릴 정도였고, CD가 처음 나왔을 땐 팝송 2000여곡을 담아 친구들에게 나눠주기도 했다고 한다. 그의 애창곡은 엘비스 프레슬리의 노래 'Can't help falling in love with you'였다. 강씨는 "승태(양 후보자)는 스탠더드 팝을 좋아했다"며 "비틀스가 새로 나왔을 때는 '음악이 너무 시끄럽다'고 좋아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손재주도 특별났다고 한다. 고교 시절 어깨너머로 라디오 조립 도면을 보고 나서 부산의 국제시장에 가서 부품을 사와 라디오를 조립할 정도였다. 그는 그 라디오로 팝송을 들었고 "음악을 들으라"며 라디오 여러 개를 조립해 친구들에게 나눠주기도 했다고 한다.

그에겐 어머니에 대한 아픈 기억도 있다. 그가 대법관이던 4년 전 어머니가 고치기 어려운 질병에 걸려 작고한 것이다. 어머니를 떠나보낸 슬픔에 빠져있던 그는 "노인 질병을 치료하는 데 써달라"며 어머니가 남긴 유산 1억원가량을 서울대병원에 기부했다고 한다. 5남매 중 막내였던 그의 몫으로 남겨진 어머니의 유산 전액이었다.

그는 판사가 된 뒤에는 요직을 거치며 엘리트 코스를 밟았지만 대법원장에 오르기까지 몇 번 고비가 있었다고 한다. 첫 번째 고비는 그가 법원행정처 차장으로 있던 2003년 당시 최종영 대법원장을 만나 "차장직을 그만하고 싶다"는 뜻을 전한 뒤 특허법원장으로 옮겼을 때였다. 사법행정을 총괄하는 그 자리는 대법관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요직이다.

그런 자리를 스스로 던진 그는 주변에 "대법관의 꿈을 접었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는 당시 노무현 정부의 사법 개혁 코드와 맞지 않아 많은 고민을 했고, 그것이 법원행정처 차장직 포기로 이어졌다고 그의 후배들은 말한다.

대법관 구성을 다양화해야 한다는 분위기 속에서 2004년 당시 48세였던 김영란 대법관이 임명됐을 때는 사표를 던질 생각까지 했다고 한다. 김 대법관은 그의 9년 후배였다. 선후배들의 만류로 사표를 던지지 않은 그는 다음 해 결국 대법관에 올랐으나, '서열 파괴' 인사는 그에게 큰 충격으로 남았다. 그는 법원행정처 차장 시절 "(대법관) 서열이 급격히 변하고 외부 인사를 앉혀야 개혁이라는 사회 분위기가 있지만 사법부까지 급진적인 개혁 분위기를 따라야 한다는 주장은 곤란하다"는 말을 했다.

그는 19일 오전 서울 서초동 대법원 청사를 찾아 이용훈 대법원장을 면담하는 것으로 대법원장 후보자로서 첫 일정을 시작했다. 그는 면담 뒤 대법원 청사를 떠나면서 "사법부가 보수화되는 것 아니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허허허" 웃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보수적이라는 평가에 대해 그는 퇴임 전 한 언론 인터뷰에서 "나도 한때는 리버럴하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고 했다. 그는 10년 전 서울지법 북부지법원장 때 호주제에 대해 최초로 헌법재판소에 위헌심판을 제청한 일을 예로 들면서 그 말을 했다. 그는 "개인의 성향은 분야별로 다르게 나타날 수 있는데 그걸 보수나 진보 어느 한쪽으로만 파악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고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