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발에 땀이 날수록 사회가 따뜻해지더라"

"몇 년 전 80대 노인 한 분이 청량리역 근처 설렁탕집에서 보자고 하셨어요. 전단지 뒷면을 오려 만든 메모지를 꺼내서 기부 금액을 설명하시는데…. 다 닳아버린 구두 뒤축을 보고 코끝이 찡해서 혼났네요."

사회복지공동모금회 펀드레이저(Fundraiser·모금 전문가) 이민구(32) 팀장은 "그렇게 아껴서 모은 7200만원을 '소중하고 의미 있는 데 써달라'고 주셔서 소년소녀가장 등 어린이 10명을 도왔어요" 하면서 "제가 하는 일이 어떤 일인지 이제 아시겠죠" 하고 말했다.

우리 사회에 기부 문화가 확산되면서 이 팀장같이 기부금을 전문적으로 모으고 관리하는 펀드레이저가 늘어나고 있다. 펀드레이저란 특정 목적에 맞는 자금 규모를 분석하고, 기부를 하려는 개인과 단체를 찾아내 기부를 성사시키는 역할을 한다. 사회복지 단체, 학교, 병원 등에서 활발히 활동 중이다. 하반기에는 30여명이 공식 모임도 결성할 예정이다. 지난 1월 한국고용정보원이 새로운 유망 직업으로 소개하기도 했다.

이 팀장은 "펀드레이저는 '꿈을 이어주는 브로커'"라며 "돈을 뜻깊게 사용하려는 기부자와 그 돈이 절실하게 필요한 수혜자를 연결해서 우리 사회가 사랑으로 가득 차게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부금을 모으는 일은 여전히 어렵다. 직접 발로 뛰며 기부자를 찾는 일이 많다. 2005년부터 펀드레이저로 활동하고 있는 이 팀장은 "그동안 기부를 부탁한 1000여명 가운데 2%만 기부를 했다"며 "보람 있지만, 그만큼 어려운 일"이라고 했다.

김현아(여·39)씨는 비영리 공익단체인 아름다운재단의 펀드레이저로 유산(遺産) 기부 컨설턴트 업무를 맡고 있다. 38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나며 유산을 기부한 한 여성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가난한 사회복지사였는데 사망 후 나올 보험금 1000만원을 저소득층을 위해 기부했어요. 그 기부금은 실직 가정 대학생들의 학자금으로 쓰였어요."

서울대 어린이병원 펀드레이저 최종협(35) 팀장은 "간혹 홍보 효과를 노려 기부금 지원 후 바로 회복이 되는 환자를 선호하는 기부자나 기업이 있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는 "그래도 이 일을 하는 건 인생 최고의 보람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기도(氣道)가 없이 태어나 생사의 갈림길에 있던 생후 11개월 신생아 해나(Hannah)가 미국에서 수술을 받게돼 새 생명을 얻게 될 일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최 팀장은 해나를 살리려고 여러 단체와 함께 2억원이 넘는 수술비를 모았다. 그는 "펀드레이저는 정말 행복한 직업"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