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성공 대신 영화 좇았더니… '아바타'도 이기더라

제임스 캐머런이 '아바타'로 전 세계 극장가를 평정하던 2009년 말 캐머런을 물리친 영화감독이 있다. 인도 영화 '세 얼간이'(원제 '3 idiots')를 만든 라지쿠마르 히라니(Rajkumar Hirani·49)이다. '세 얼간이'는 그해 인도 개봉 당시 첫 주 119억원의 흥행수익을 거두며 '아바타'를 제쳤고, 전 세계에서 811억원을 벌어들여 역대 발리우드(Bollywood·뭄바이의 옛 명칭 봄베이와 할리우드의 합성어로 인도 영화를 통칭) 영화 흥행 수익 1위에 올랐다. 지난해 인도의 아카데미상 격인 국제인도영화아카데미 시상식에서 5개 부문을 수상해 작품성도 인정받았다. 국내에서는 17일 개봉했다.

인도 나그푸르(Nagpur)시 출생인 히라니 감독은 편집 기사로 영화계에 입문했다. 감독 데뷔작은 2003년 코미디 영화 '문나 형님, 의대에 간다'. '세 얼간이'는 그의 세 번째 연출작이다.

히라니 감독은 최근 본지 이메일 인터뷰에서 "결과가 좋았지만 처음부터 박스오피스를 노리고 영화를 만든 것은 아니다"고 했다. 그는 "영화를 통해 '돈과 성공을 좇지 말고 당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해라, 그럼 성공은 자연스레 뒤따를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을 뿐"이라며 "흥행은 영화 속 메시지처럼 자연스레 따라온 것 같다"고 했다.

'세 얼간이'의 플롯은 단순하다. 매년 40만명이 지원해 200명만 입학하는 인도 최고의 공대 ICE는 오로지 경쟁과 성공만을 강조하는 학교다. 그러던 어느 날 엉뚱한 신입생 란초(아미르 칸)가 나타나 주입식 교육에 반기를 든다. "2등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는 신조를 가진 사하스트라부테 총장(보만 이라니)은 란초를 쫓아내려 하지만, 파르한(마드하반)과 라주(셔먼 조쉬) 등 친구들은 란초 덕에 성공이 아닌 원하는 삶을 찾아간다는 내용이다.

전형적인 청춘 영화지만 한 템포 빠른 유머와, 발리우드 특유의 집단적으로 노래하고 춤추는 뮤지컬 장면이 관객을 웃기고 울린다. 히라니 감독은 "인도 영화에서 뮤지컬 장면은 음식의 향신료와 같은 존재"라며 "어릴 때부터 영화를 볼 때 항상 뮤지컬 장면을 보아왔다. 우리는 영화에 그 부분이 없으면 뭔가 빠진 듯한 느낌이 들 정도"라고 했다.

영화에 등장하는 노래 중 가장 인상적인 것은 주제가 '알 이즈 웰(Aal izz well)'이다. 영어로 "모든 게 좋다(All is well)"는 말을 인도식으로 발음한 것이다. 히라니 감독은 "사람 마음은 말 그대로 마음먹기에 달렸다"며 "상황이 좋지 않아도 가슴에 손을 얹고 '알 이즈 웰'이라 외치는 순간 마음속 근심 걱정이 사라진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철학은 영화 속에선 주인공 란초 역의 배우 아미르 칸의 목소리로 전해진다. 아미르 칸은 코미디와 드라마에 모두 능한, 우리로 치면 송강호 정도에 해당하는 '국민 배우'다. 히라니 감독은 "칸이 부탁해 ICE 기숙사에서 묵으며 촬영했는데, 배우들이 실제 ICE 학생들과 배드민턴·테니스·체스를 하다 보니 결과적으로 리얼리티가 살았다"고 했다. 그는 칸 등 주연 배우들에 대해 "인도 최고의 스타들인데도 수차례 리허설은 물론 자기 촬영분이 없는 날까지 자리를 지켰다"며 "이런 배우들과 같이 작업한 나는 행운아"라고 했다.

"한국 영화를 본 적이 있느냐"고 묻자, 히라니 감독은 "유감스럽게도 본 적 없지만 한국 감독과 영화가 세계적 수준이라는 것은 익히 들어 알고 있다"며 "한국 영화를 몇 편 추천해달라"고 부탁했다. 한국 관객들에게는 "'세 얼간이'는 버디 영화(buddy film·우정을 다룬 영화)인 만큼 친구와 함께 봐 달라. 약속건대 절대 실망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할리우드의 아바타까지 이겼는데 다음 영화의 목표는 무엇이냐"고 묻자 다음과 같은 답변이 돌아왔다. "영화를 만드는 사람은 남을 이기려 하지 않는다. 경쟁하는 게 아니라 서로 협조하고 보완하는 관계다. 내가 영화를 만드는 것은 마음속에 가지고 있는 것을 나누기 위해서다. 난 영화를 통해 꿈을 이야기하고 싶다." 우문현답(愚問賢答)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