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세에 대학원 간 비구니 "내게 화두는 영어"

"공부하는 데 나이가 상관없다는 거. 그거 거짓말이야. 잘 안 보이고, 잘 안 들려. 그래서 더 열심히 해야 해."

23일 서울 중구 동국대학교 중강당에서 열린 2학기 대학원 오리엔테이션에 참석한 77세의 비구니 할머니 승묘 스님은 안경을 추켜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영문학과 석사과정 신입생인 스님은 1953년 동국대 대학원이 문을 연 이래 최고령 석사과정 입학생이다.

승묘 스님은 이날 오후 2시에 열린 오리엔테이션에 앞서 오전 9시 30분부터 학교에 와서 영어책을 펴놓고 공부하고 있었다. 오리엔테이션에서는 맨 앞자리에 앉아 수강 신청 등 학사 일정을 메모했다. 스님은 "머리가 뱅뱅 돌아. 수강 신청 어떻게 하는지 하나도 모르겠어"라며 "공부하는 것보다 훨씬 어려워. 학점 못 따면 어떡하지"라고 걱정을 늘어놨다.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 워즈워스의 시를 좋아하던 그는 동국대 영문학과에 진학했지만 27세이던 대학교 4학년 때 갑자기 가세가 기울자 출가를 결심했다. 수행을 마치고 복학해 졸업한 뒤에는 1970년부터 명성여고에서 승복을 입고 교편을 잡아 1999년 정년 퇴임할 때까지 30년 동안 영어를 가르쳤다.

퇴임한 뒤에는 2001년부터 지금까지 단 하루도 빼놓지 않고 영어학원에 다니고 있다. 이날도 오전 3시에 일어나 학원 강의 내용을 예습하고, 7시에 시작한 학원 강의를 들었다고 했다.

그는 "세상에 화두가 아닌 게 없다는데, 내게 화두는 영어인 것 같다"고 했다. 선사(禪師)들의 말씀도 구글에서 영어로 찾아본다고 했다.

그는 석사과정을 밟으면서 영국 낭만주의 시인의 작품에 대한 논문을 쓸 계획이다. 컴퓨터에 익숙하지 않은 스님은 두 손가락만 쓰는 '독수리 타법'으로 자판을 치느라 학기가 시작되면 밤을 새워서 리포트를 써야 할 처지라고 했다. 그는 "평생 공부를 끝내지 못한 기분이었다"며 "아프지만 않으면 박사과정까지 계속 공부하고 싶다"고 했다.